김서연 강북삼성병원 산부인과 교수가 28일 오전 분만 수술 후 갓 태어난 아기를 안고 있다. 이 산모는 뇌출혈 등을 유발할 수 있는 임신성 고혈압 증세를 보여 응급 제왕절개 수술을 받았다. 현재 산모와 아기 모두 건강하다./강북삼성병원

지난 28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강북삼성병원 산부인과 병동. 김서연(37) 산부인과 교수가 전화를 받고 초음파 검사 장비를 챙겨 초음파실로 달려갔다. 머리는 부스스했고, 그가 신은 슬리퍼엔 수술 때 묻은 핏자국이 보였다.

초음파실엔 맹장염 수술을 받아야 하는 임신 17주 산모가 있었다. 전신 마취를 앞두고 있어 태아 상태를 점검한 것이다. 김 교수는 “산모를 전신 마취하는 경우 태아에게 영향이 없도록 하지만, 태아가 수술 중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이 병원 산부인과에는 전공의가 7명 있었다. 김 교수는 이들이 이탈한 지난달 20일부터 한 달 넘게 3평(10㎡) 남짓한 당직실에서 먹고 자고 있다. 그에게 찾아오는 산모는 일반 산모가 아니다. 조산이나 다태아, 기저 질환이 있는 고위험 산모들이다. 처치가 조금만 늦어져도 산모나 아기가 사망하거나 장애가 남을 수 있다.

그래픽=김하경

-하루를 어떻게 보내나.

“오전 6시쯤 일어나 회진(병실 순회 진료)을 시작한다. 산모 배에 초음파 기기를 대 태아 상태를 확인한다. 수술받은 환자들은 상처 부위를 소독·치료한다. 오전 8시~8시 30분에 수술이나 외래 진료를 시작한다.”

-외래 진료 중 응급 환자가 오기도 하나.

“당연하다. 그럴 때마다 외래를 잠시 멈추고 응급 수술을 한다. 평소 같으면 전공의들이 응급처치를 하면서 시간을 벌어주지만, 지금은 제가 더 많이 움직여야 한다. 보통 1시간짜리 수술이 끝나면 바로 진료실로 돌아와 외래 환자를 본다.

-잠은 언제 자나.

“밤엔 당직실에서 대기하면서 다음 날 수술 준비를 많이 한다. 밤 11시쯤 당직실 간이침대에 눕는다.”

-몇 시간이라도 내리 자나.

“새벽에 수시로 깬다. 급박하게 환자를 봐야 할 때가 많다. 전날(27일)에도 자정을 넘겨 응급 분만 환자가 들어와 거의 1시간 동안 수술했다.”

-개인 생활이 어려울 것 같다.

“집에는 대략 일주일에 1~2번 간다. (전공의 이탈 후) 집에서 잔 적은 없다. 빨랫거리 챙겨 가서 세탁기에 돌리고, 해 놓은 빨래 챙겨서 서둘러 당직실로 온다. 일이 그나마 적을 때를 이용해 집에 가는데, 그럴 때마다 응급 환자가 들어오더라. 마음이 불편한 것보다는 잠자리가 불편한 게 낫다.”

김 교수는 이 병원에서 분만을 담당하는 교수 2명 중 한 명이다. 24시간 내내 병원을 지키며 하루에 3~4건 분만과, 적으면 30건 많으면 60건 외래 진료를 담당한다.

-최근 어떤 응급 환자가 들어왔나.

“태반 조기 박리(분만 전에 태반이 자궁에서 떨어지는 현상) 응급 환자가 들어왔다. 여러 상황 때문에 임신 도중 검진을 전혀 받지 않은 산모였다. 이런 경우 태아나 산모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심지어 몇 주짜리 아기인지도 모른다. 산모와 태아 모두 위험할 수 있다. 병원에 없었다면 분만을 못 했을 것이다.”

-힘에 부치지 않나.

“응급 환자가 수시로 생기니 어쩔 수 없다.”

-전공의 파업과 교수들의 사직서 제출 등으로 환자들이 불안해하지는 않나.

“갑자기 진료를 못 받게 되는 거 아니냐고 걱정하는 환자들이 있다. 제가 일을 못 하게 되면 다른 의사에게 분만을 맡겨야 하는 상황을 두려워한다. 열 달 가까이 저를 믿고 따라온 분들이다. 걱정하실 때마다 ‘최선을 다하겠다’ ‘제 몸을 갈아 넣어 보겠다’고 말한다(웃음).”

-전공의들의 이탈로 업무 부담이 커졌을 것 같다.

“다른 교수들과 분만실 간호사, 조산사 등이 각자 자리에서 빈자리를 메우느라 애쓰고 있다. 지금도 현장에서 묵묵하게 사명감을 갖고 환자의 바이털(생명)을 지키고 있는 분이 많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은 어떻게 지내나.

“필수 의료 과목은 전공의들이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월급이 나오지 않아, 살던 병원 근처 집을 빼버린 사람도 있다. 정부 태도가 강경해 불안해하기도 한다.”

지난 28일 오전 강북삼성병원에서 산부인과 김서연 교수가 전공의 공백의 현장에서 근무하고 있다. 김 교수는 매일 새벽 출근해 분만 수술을 집도하고 틈틈이 병동을 찾아 환자들을 체크하는 등 분주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이태경 기자

-이 사태를 어떻게 풀어야 하나.

“교수로서는 (정부가) 조금이라도 여지를 줘야 전공의들과 이야기를 해보고 설득할 수가 있다. 이런 (극한 대치) 상황이 계속되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된다.”

-산부인과를 지망한 이유는.

“처음부터 산부인과를 지망한 건 아니다. 다만 수술하는 의사가 꼭 되고 싶었다.”

-어떨 때 뿌듯함을 느끼나.

“산과(産科)는 업무가 많지만, 순수하게 고맙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다. 밤에 고생하더라도 아기 울음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좋고, 그런 상황에서 나오는 에너지로 힘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