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 2월 ‘의대 2000명 증원’ 정책을 발표한 후 바이털(생명과 직결된 필수 의료) 분야 진출을 고려하는 의대생이 크게 줄었다는 설문 조사 결과가 나왔다.
31일 이준서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외과 교수와 전국 의대생·전공의 단체 ‘투비닥터’는 이런 내용의 ‘의대 증원 및 필수 의료 패키지 정책과 의대생 진로 선택’ 설문 결과를 공개했다. 설문 조사는 지난달 20일부터 25일까지 6일간 진행됐다. 전국 의대생 859명이 참여했다.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3.9%는 “정책 발표 전 바이털을 진지하게 고려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책 발표 후 바이털을 진지하게 고려한다”고 밝힌 응답자는 19.4%에 불과했다.
의대생들이 희망하는 전공은 정책 발표 전에는 내과(17.6%)가 가장 많았다. 그 뒤를 이어 신경외과(8.4%), 정형외과(8.2%), 외과(8%), 정신건강의학과(6.4%) 등 순이었다. 정책 발표 후에는 일반의(21.2%), 정신건강의학과(5.2%), 피부과(4.7%), 안과(4.4%), 정형외과(3.7%) 순으로 바뀌었다. 내과·신경외과 등 필수 의료로 꼽히는 분야들이 후순위로 밀려난 것이다. 희망 전공이 바뀐 이유로는 ‘과에 대한 부정적 전망 예측’(29.3%), ‘의대 증원 및 필수 의료 패키지에 대한 반대’(24.7%), ‘의사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존중 부재’(20.9%) 등이 꼽혔다.
특히 ‘일반의’를 선호하는 의대생이 정책 발표 전 0.8%에서 발표 후 21.2%로 26배가 됐다. 일반의는 의대를 졸업하고 국가고시를 통과해 의사 면허는 땄지만, 인턴·레지던트 등 전공의 수련 과정을 거치지 않은 의사다. 인턴·레지던트를 포기하고 일반의로 남는 경우가 늘어나면 사회에 꼭 필요한 필수 의료 분야 의사들은 더욱 줄어들게 된다.
전공의 수련이 필수라고 생각하는 의대생도 줄었다. 응답자의 91.4%가 “정책 발표 전 전공의 수련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지만, “정책 발표 후에도 전공의 수련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고 한 의대생은 3분의 1(32.4%) 수준으로 줄었다.
연구진은 “정부가 제시한 필수 의료 강화 정책의 역효과로 바이털을 전공하느니 차라리 수련을 받지 않고 개원가로 나가겠다는 의견이 늘어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의대 2000명 증원으로 시장에 의사가 쏟아져 나오기 전에 개원하는 게 낫다고 보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 29~30일 전국 40개 의대에서 의대생 256명이 추가로 휴학을 신청하면서, 의대 증원에 반발해 휴학계를 제출한 의대생은 총 1만242명이 됐다. 지난해 4월 기준 전국 의대생(1만8793명)의 54.5%가 휴학계를 제출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