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를 접한 의사들 중엔 “이젠 아무 기대도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 대학 병원 교수들은 예고한 대로 외래 환자 진료를 최소화하거나 중단하고, 개원의들도 각자 상황에 맞게 ‘주 40시간’ 단축 진료를 하며 ‘준법 투쟁’을 시작하겠단 것이다.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현재의 의정(醫政) 대치 상황이 해결될 수 있는 실마리가 제시될 것으로 생각했지만, 이전의 정부 발표와 다른 점을 찾아볼 수 없었다”며 “많은 기대를 했던 만큼 더 실망을 하게 된 담화문”이라고 했다. 전국의대교수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의 방재승 위원장은 본지에 “(대통령의 담화문은) 정부가 현 의료 사태를 해결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교수 단체인 전국의대교수협의회(전의교협) 소속 한 교수는 “이제 (정부와 전공의 사이의) 중재도 포기하겠다.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서울의 한 대학 병원 교수는 “대통령이 직접 이탈한 전공의들을 향해 ‘(면허정지) 법 절차’와 ‘미래 수입 감소’ 얘기를 하며 전공의들을 이기적인 불법 집단으로 몰았다”며 “의료계와 대화 의지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전의교협은 이날 저녁 7시부터 밤늦게까지 긴급 총회를 열고 향후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한 참석자는 “대통령이 이날 담화에서 ‘2000명 증원’ 고수에 방점을 둔 것인지, ‘대화’에 무게를 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얘기가 나왔다”고 했다. 또 회의에선 윤 대통령이 이날 “(의대 증원) 정책은 바뀔 수 있다”며 의료계와의 협의 여지를 열어둔 것과 관련해서도 “대통령의 정치적 레토릭(수사·修辭)에 불과하다”는 의견이 있었다고 한다.
전공의들도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서울아산병원의 한 전공의는 “대통령이 ‘논의를 해보자’는 전향적 입장을 밝혔다면 전공의들도 당연히 대화에 나섰을 것”이라며 “검사 출신 대통령이 의사를 범죄자로 보고 있다는 게 증명된 담화”라고 했다. 서울 대형 병원의 한 전공의는 “대통령이 전공의들을 의대 증원으로 수입이 줄어들까 봐 환자 곁을 떠난 것처럼 악마화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이날 의료계가 과학적 근거를 갖춘 통일된 의대 증원안(案)을 가져오면 논의할 수 있다고 밝힌 것에 대해서도 “단일안 도출이 사실상 어렵다는 것을 알고 한 제안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의대 증원과 관련해서는 개원의와 의대 교수, 전공의들의 입장이 다르다. 개원의들은 증원 자체에 반대하는 기류가 강하다. 의대 교수들은 대체로 ‘증원은 필요하지만 2000명은 과하다’는 입장이다. 전공의들은 “협의체를 만들어 원점에서 의대 증원 문제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분위기다.
일각에선 대통령이 증원 숫자를 논의할 수 있다는 취지를 밝힌 만큼 전공의들도 증원에 대한 통일된 입장을 내놔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권용진 서울대병원 공공진료센터 교수는 본지에 “대통령이 (의대 증원 관련) 단일안을 가져오면 대화한다고 말했다”며 “이제 진료 현장을 떠난 전공의들이 책임감 있게 (통일된) 입장을 내놔야 한다”고 했다.
한편 이날 의대 증원을 반대하는 의대생 1만3000여 명은 정부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전국 의대 재학생(1만8793명) 중 70%에 달하는 학생들이 소송에 참여한 것이다.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의 법률 대리인을 맡은 이병철 변호사는 서울행정법원에 2000명 의대 입학 증원 처분 취소 소송과 집행정지 신청서를 제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