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중국인 A씨는 2020년 7월 한국에 들어왔다. 간암을 치료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입국 직후 한국에 사는 가족의 피부양자로 건강보험에 가입했다. 이후 국내 병원에서 64건을 진료받았다. 건강보험공단이 A씨 진료비로 부담한 금액은 약 5000만원이었다. 그는 입국한 지 1년 만인 2021년 7월 모든 치료를 끝내고 중국으로 돌아갔다.
베트남 국적인 50대 B씨도 2020년 한국에 들어와 사위의 피부양자로 건강보험에 가입한 뒤 간질환 등 지병 치료를 받고 돌아갔다. 1년간 건보공단 부담액은 총 9000만원에 달했다.
이들은 피부양자이기 때문에 건강보험료를 한 푼도 안 낸다. 이른바 ‘건보 외국인 무임승차자’다. 입국 직후 피부양자로 건강보험에 가입한 뒤 국내 병원에서 ‘단기 집중 치료’를 받고 돌아가는 식이다. 외국인도 건보 직장 가입자의 피부양자 자격만 되면 한국에 들어오자마자 바로 건보에 가입해 혜택을 볼 수 있는 제도적 허점을 이용한 것이다.
하지만 3일부터 국내에 들어오는 외국인, 재외 국민은 6개월 이상 체류해야만 피부양자가 될 수 있다. 이런 내용으로 개정한 국민건강보험법을 시행하기 때문이다. ‘외국인 무임승차’ 문턱은 대폭 높아질 전망이다. 6개월 미만 단기 거주 외국인은 피부양자 자격을 얻지 못하게 되면서, 건보 혜택을 받는 외국인 수가 연간 약 1만명 정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정부 관계자는 “1년에 건강보험 재정 약 121억원을 아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예컨대 국내 기업 등에서 일하는 외국인 직장 가입자의 부모, 형제, 대학생 자녀 등은 입국 후 6개월간 피부양자 등재가 불가능해진다. 다만 직장 가입자의 배우자와 19세 미만 자녀, 결혼 이민, 영주, 유학 등 체류 자격이 있는 경우엔 외국인이라도 종전처럼 국내 입국 즉시 피부양자로 등록해 건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외교관이나 외국 기업 주재원 가족을 위한 조치다.
종전엔 내국인 직장 가입자의 외국인 장인·장모도 국내 입국 후 바로 피부양자로 등록해 건보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실제 외국인 장인·장모를 국내로 데려와 치료만 받게 하고 돌려보내는 사례가 적잖았다. 그런데 3일부터는 이들도 6개월 체류 뒤에 피부양자로 등재할 수 있다.
작년 말 기준 외국인 건강보험 가입자는 약 146만명으로, 중국 국적 가입자가 70만명가량(48%) 된다. 이어 베트남(15만명), 우즈베키스탄(7만명), 네팔(5만명) 순이다. 가입 유형으로는 지역 가입자(46%)가 가장 많고, 직장 가입자(41%), 직장 가입자의 피부양자(13%) 순이다.
이 가운데 지역 가입자는 종전에도 국내에 6개월 이상 체류해야만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있었다. 반면 건보료를 한 푼도 안 내는 피부양자는 입국 즉시 건보에 가입해 혜택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외국인이 피부양자로 이름을 올리려면 직장 가입자와 맺은 관계, 소득·재산 기준 등 요건을 충족해야 하는데, 이를 확인하기도 어려웠다.
전체 외국인 건보 가입자의 재정 수지는 2022년에도 5560억원 흑자를 기록하는 등 매년 흑자다. 외국인이 건보료로 낸 돈보다 보험 급여를 적게 받았다는 뜻이다. 하지만 국가별로 보면 중국은 2022년 229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이번 개정 건강보험법 시행으로 ‘건보 외국인 무임승차’ 사례가 줄어들 것으로 보이지만, 6개월 체류 조건만으로 원천 차단하긴 어렵다. 법이 시행되기 전인 4월 2일 이전에 입국해 건보에 가입한 외국인 피부양자는 건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일부 외국인이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를 바로잡겠다는 취지”라며 “한국에 온 주재원·외교관의 배우자와 미성년 자녀를 비롯해 일반적인 외국인 가입자 대다수는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