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대통령과 전공의들이 만나 담판을 짓는 수밖에 없다.”

이달 들어 정부와 의료계 내부에선 이런 말이 많이 나왔다. 응급 환자 치료가 사실상 막히는 ‘의료 대란’ 직전인 현시점에서 정부와 의료계의 극한 대치를 풀어 진료 정상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사람은 대통령과 전공의들뿐이라는 뜻이다.

서울의 한 병원장은 “이번 갈등의 양 당사자인 대통령과 전공의가 결자해지(結者解之)해야 한다”며 “대통령이 먼저 손을 내밀었으니 이제 전공의가 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료진 격려하는 尹대통령 - 윤석열 대통령이 2일 충남 공주의료원을 방문해 의료진을 격려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해 병원을 이탈한 전공의들을 직접 만나 대화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대통령실

이번 ‘의대 2000명 증원’을 밀어붙인 사람은 윤석열 대통령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복지부 장차관도 작년 말부터 주변에 ‘(의대 증원은) 내 손을 떠난 문제’라고 말하곤 했다”고 했다.

이에 전공의 1만명은 집단 이탈로 맞섰다. 동시다발적으로 환자 진료를 전면 중단하는 ‘극약 처방’으로 대통령의 대척점에 선 것이다. 일주일 만에 한국의 간판 격인 ‘빅5′(서울대·서울아산·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성모) 병원의 수술·입원 환자 수가 반 토막 났다. 24시간 응급실과 입원실을 지키던 전공의가 떠나자 이들에게 과도하게 의존해온 대형 병원의 응급·중증 환자 치료 기능이 절반 밑으로 쪼그라든 것이다.

그래픽=양인성

의료 전문가들은 “국내 대형 병원들이 최저임금을 받으며 주 100시간 근무를 하는 전공의 중심 병원이었다는 속성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라며 “전공의의 영향력이 가장 클 수밖에 없다”고 했다. 생명과 직결된 필수 의료 분야의 수가(건보공단이 병원에 주는 돈)는 우리가 해외 주요국보다 낮은 편이다. 이런 구조에서 대형 병원의 응급·중증 환자 치료를 떠받친 주체가 전공의였다. 실제 ‘빅5′ 등 국내 대학 병원들의 전공의 비율은 30~40%대다. 미국·일본 등 주요국 대표 병원의 전공의 비율(10%)의 3배 이상이다.

이런 전공의들은 병원을 떠난 뒤 외부와의 접촉을 끊다시피 했다. 복지부 2차관 등이 일부 전공의에게 수십차례 전화나 문자로 “만나자” “찾아가겠다”고 했지만 대꾸하지 않았다. 전공의 1~2명만 언론에 나와 ‘2000명 증원 백지화’라는 기존 전공의들의 요구를 반복해서 말했다. 정부가 행정처분(면허정지)과 형사처벌(업무 복귀 명령 미준수) 절차를 밟겠다고 수십차례 발표했지만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일부는 ‘나를 잡아 가라’는 글을 자기 소셜미디어에 올리기도 했다. 스승인 의대 교수들도 “요즘 전공의들은 우리 전화도 받지 않는다. 우리 때와 많이 다르다”고 했다.

그러나 의료계에선 “전공의도 더 이상 무반응으로 일관할 수 없는 지점에 왔다”는 말이 나온다. 전공의 집단 이탈이 40일을 넘어가면서 암 환자의 수술이 연기되는 등 중환자들이 고통이 임계점에 도달했다. 대형 병원들도 전공의 이탈로 수백억원의 적자를 보며 휘청이고 있다. 서울의 한 대학 병원 교수는 “만일 폐원하는 대학 병원이 한 곳이라도 나오면 다른 병원들도 줄도산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대통령이 대화를 제의한 상황에서 중환자를 전담하는 대형 병원들이 연쇄적으로 가동을 멈추면 분노 여론이 들끓을 수 있다. 이번 사태를 일으킨 전공의들이 돌이킬 수 없는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일부 전공의 사이에서는 “대통령이 정원 협의 여지를 열어뒀으니 우리도 답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조금씩 나오고 있다. 전공의들이 대화에 나서면 의료 정상화는 급물살을 탈 수 있다. 대학 교수들이 집단 사표를 제출하고 있는 것도 제자인 전공의들이 면허정지 등 불이익을 받는 것 아니냐는 우려 때문이다. 물론 의사 사회엔 개원의도 있다. 정부 관계자는 “지금 중요한 것은 중환자 치료를 하는 대형 병원 의사들, 특히 전공의”라고 했다. 주로 경증 환자를 보는 개원의는 이번 사안의 중심이 아니며 집단으로 진료 거부할 개연성도 높지 않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