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생명이) 꺼지는 걸 볼 순 없잖아요. 대학병원 가서 만약에 잘못되더라도 하는 데까진 해봐야 되잖아요.”
충북 보은군 보은한양병원 응급실 당직 의사 A(56)씨는 지난달 30일 119 상황실에 전화해 절규했다. 그는 물웅덩이에 빠져 심정지 상태로 발견된 뒤 이 병원 응급실로 이송된 생후 33개월 여아를 어떻게든 살려보려 했다. 호흡도, 맥박도 없는 상태에서 A씨 등 의료진의 심폐소생술(CPR)로 40여 분 만에 다시 아이 맥박이 돌아왔다.
8일 소방 당국 등을 통해 본지가 입수한 사고 당시 119 신고 녹취록에는 그 직후 약 2시간 동안 당직의 A씨가 아이를 살리기 위해 더 큰 병원으로 보내보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모습이 그대로 담겼다.
아이 맥박이 돌아온 30일 오후 6시 15분 A씨는 119 상황실에 전화했다. 6분 12초간 아이 상태 등을 설명하면서 “살려야 하니 좀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30분 CPR 후 20분 컴프레션(가슴 압박)으로 자발 호흡도 돌아왔어요”라며 “충북 지역 대학병원, 경기 남부까지 알아보는 중인데, 다들 ‘소아 중환자 받을 데가 없다’고 하니 저희 좀 도와주세요”라고 했다. 이어 “누군가는 받아야 되잖아요. 응급처치는 저희가 할 수 있는 한에서 했고, 거리가 멀어도 다음 처치가 가능한 곳으로 가야 하는데 지금 ‘중환자실에 자리가 없다’면서 안 받아요”라고도 했다.
의료진과 119 상황실은 아이를 옮기려 충청·경기 지역 대학병원 11곳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소아 중환자를 받을 여력이 안 된다’는 이유로 전원(轉院)이 불발된 뒤 아이는 숨을 거뒀다. 의료계에선 다른 큰 병원으로 옮겼어도 아이 목숨을 구하긴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한다. 당직의 A씨는 병원을 통해 ‘인터뷰는 사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거리가 멀어서, 의료진과 소아 중환자실 병상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전원 시도조차 할 수 없었던 상황 자체가 지역·소아 의료의 열악한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란 지적이 나왔다.
112개 병상으로 보은군 내 유일한 병원급 의료기관인 보은한양병원 응급실 당직의(일반외과 전문의) A씨는 지난달 30일 오후 4시 49분 119 구급차로 이송된 생후 33개월 아이를 환자로 받았다. 1m 깊이 물웅덩이에 빠진 아이는 19분 전 아버지에게 구조된 직후부터 이미 호흡과 맥박이 없었다. A씨 등 의료진의 CPR(심폐소생술)이 30분 넘게 이어졌다. 아이 심장을 뛰게 하기 위해 약물도 계속 투여했다. 오후 5시 33분 심전도를 표시하는 모니터에 신호가 잡혔다. 의식은 없었지만, 맥박이 다시 뛰기 시작한 것이다. 병원 측은 “약물에 의한 (일시적) 심장 박동 신호로 보였지만, 그래도 살려보려고 의료진이 대형 병원으로 전원을 시도했다”고 했다.
A씨 등 의료진은 충청·경기권 대학병원에 전화했지만, “인력·병상이 부족하다” “이송 가능한 환자 상태가 아닌 것 같다” 등 이유로 거부됐다. 결국 아이 맥박이 다시 뛴 지 40여 분 만인 오후 6시 15분 119 상황실에 도움을 청했다. 본지가 확보한 녹취록에는 당시 급박했던 상황이 상세히 묘사돼 있다.
A씨는 상황실 요원에게 “33개월 된 여자 아이예요. 물에 빠졌다가 30분 정도 CPR을 했고, ROSC(자발순환회복·자발적 심장 박동으로 맥박이 감지되는 상태)가 됐고, 20분 정도 컴프레션(가슴 압박) 도와주면서 지금 자발 호흡까지 돌아왔어요. 멘털(의식)은 아직 깨진 않았어요”라며 상태를 설명했다. 이어 “충북 지역 대학병원, 경기 남부까지 지금 알아보는 중인데, ‘소아 중환자를 받을 데가 없다’고 지금 그러는 거예요. 다들”이라며 “○○대랑 분당 ○○대, ○○대병원에 전화해서 어레인지(병원 선정) 해주실 수 없나요”라고 했다. 청주·대전 등 가까운 대학병원으로의 이송이 거부되자, 119에 60~140㎞ 떨어진 타 시도 병원 이송을 알아봐 달라고 한 것이다.
상황실 요원이 알겠다고 하자 그는 “어쨌든 누군가는 받아야 되잖아요. 우리는 성인 중환자실도 대단치 않은 지역의 조그마한 병원인데, 우리가 계속 손에 쥐고 있으면서 (생명의 불씨가) 꺼지는 걸 볼 수는 없잖아요”라고 했다. 그러면서 “누구든, 어딘가는 받아야지, 대학병원에 가서 정말 만약에 잘못되더라도 하는 데까지 해봐야 될 거잖아요”라며 “문제는 ‘중환자실이 없다’고 안 받아버리니까. 지금 저희 좀 도와주실 수 있나요”라고 했다.
상황실 요원이 “선생님이 전화하시는데도 주변(병원)에선 힘들다고 얘기하나요”라고 묻자, A씨는 “그렇죠. 주변 대학병원들은 ‘일단 자리가 없다’예요. 아까 전화하기 시작할 때는 셀프브레스(자발 호흡)가 없었는데, 전화하는 동안에 자발 호흡도 돌아왔어요”라고 했다. 감정은 더 격해졌다. A씨는 “멘털(의식)은 아직 안 깼는데 좋은 것만 예상하고 지금 여기서 이럴 순 없는 거잖아요. 말도 안 되는 거잖아요. 최대한 장비나 이런 게 갖춰진 데로 가야 되는데. 응급처치는 저희가 할 수 있는 내에선 했단 말이에요”라고 했다. 또 “지금 다행히 심장하고 호흡이 살아났으니까 그다음 처치가 가능한 데를 가야 되는데 섭외가 안 돼요. 그러니 그걸 좀 도와주셨으면 해요”라며 “예상은 했지만 지금 주변에 소아 중환자실 자리가 없대요. 거리가 멀어도 지금 가야 되는데”라고 했다.
당일 녹취록에 따르면, 이후 119 상황실의 전원 시도에도 상황이 바뀌진 않았다. 충북 B 대학병원은 “아이가 중환자실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아야 할 텐데 지금 돌볼 의료진이 없다”고 했다. 세종 C 대학병원은 “우리도 CPR 환자가 생기면 다른 병원으로 보낸다”며 전원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충남 D 대학병원은 “소아 환자 중환자실 케어가 안 되는 상황”이라고 했다. 경기 E 대학병원은 “(병상) 자리가 없어서 중환자실에서 안 된다고 한다”고 했고, 경기 F 대학병원은 “아이가 오는 도중에 다시 심정지가 발생할 것 같다”며 전원이 안 된다고 했다.
의료진과 119가 함께 두 시간 가까이 총 11곳으로 전원을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오후 7시 1분쯤 다시 심정지가 온 아이는 최초 구조 3시간 10분 만인 30일 오후 7시 40분 숨을 거뒀다. 병원 관계자는 “보호자들이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붙잡고 싶다’며 너무나 간절히 원해 전원을 시도한 것이고, 다른 병원에서 아이를 받아주기 어려웠던 상황이었던 점은 충분히 이해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