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첫 영수회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박성준 수석대변인, 천준호 대표비서실장, 진성준 정책위의장, 이 대표, 윤 대통령,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 /대통령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29일 윤석열 대통령과의 양자 회담에서 “의대 정원 확대 같은 의료 개혁은 반드시 해야 될 주요 과제”라며 “민주당도 적극 협력하겠다”고 했다. 의대 증원이 필요하다는 큰 방향에선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뜻을 같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의대 증원은 민주당이 예전부터 주장했던 사안이기도 하다.

이로써 정부는 향후에도 의대 증원 등과 관련한 지금의 ‘유연한 입장’을 고수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 대표가 이날 회담에서 의정 갈등의 해법으로 제시한 ‘3대 원칙’이 지금의 정부 입장과 큰 틀에서 유사하다는 점도 이런 분석에 힘을 실었다.

이 대표가 언급한 ‘3대 원칙’은 ①정부의 (의대 증원 규모 관련) 전향적 태도 변화 ②공공·필수·지역 의료 강화 ③의료진의 즉각적 현장 복귀다. 이 중 정부가 할 수 있는 부분은 ‘증원 수 관련 전향적 태도’ ‘필수·지역 의료 강화’인데, 이는 이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사안이라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 19일 내년도 의대 입학 정원을 대학별 증원분(총 2000명)의 50~100% 범위에서 각 대학이 자율적으로 정하게 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또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은 예정대로 하되, 현 고2가 입시를 치르는 2026학년도부터는 의료계와 증원 규모를 재논의할 수 있다고 발표했었다. 기존의 ‘2000명 증원’이란 입장을 포기하고, 타협안을 제시하는 ‘전향적 태도’를 보인 셈이다.

이 대표가 언급한 ‘필수·지역 의료 강화’와 관련해서도 정부는 지난 2월 ‘필수·지역 의료 (강화) 패키지’ 정책을 발표하며 “올해부터 5년간 재정 10조원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했었다.

尹·李 회담 지켜보는 환자들 -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양자 회담 관련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이날 이 대표는 의대 정원 확대 등 정부의 의료 개혁에 적극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고운호 기자

하지만 정부 내에선 “중요한 건 디테일(세부 사안)”이란 목소리가 나온다. 큰 방향은 같더라도 세부 사안에서 입장이 갈리면 정부와 야당의 ‘공조 무드’가 언제든 깨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이번 의정 갈등을 일으킨 ‘의대 증원 규모’와 관련, 정부는 매년 1000~2000명을 증원해야 붕괴 직전인 필수·지역 의료를 살릴 수 있단 입장이다. 그런데 민주당은 구체적인 증원 숫자를 밝히지 않고 있다. 이 대표는 지난 2월 국회에서 “적정 증원 규모는 400~500명 선”이라고 했었다. 증원 규모를 놓고 충돌할 가능성이 낮지 않다는 얘기다.

필수·지역 의료 강화 역시 마찬가지다. 민주당은 예전부터 이를 위해 지역별로 공공의대 신설을 추진해 왔다. 현 정부 내에선 회의적인 반응이 많다. “의대 교육에 필요한 교수진과 시설, 전공의들이 현장 교육을 받을 수련 병원을 마련하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차라리 지금 있는 의대의 정원을 확대하는 게 훨씬 빠르고 효과적”(복지부 관계자)이라는 것이다.

또 이 대표와 민주당은 여야(與野), 의료계가 참여하는 국회 공론화 특위를 만들어 이번 의정 갈등을 논의하자고 하고 있다. 정부 내에선 “수용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반면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갈 것” “민주당이 합의를 도출하기 전까지 의대 증원을 1년 미루자고 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많다.

정부와 야당이 합의를 본다고 해도 ‘의료계 설득’이란 더 큰 산이 버티고 있다. 임현택 의협 회장 당선자는 이날 본지 통화에서 “의대 증원 문제는 정치인들이 결정할 게 아니다”며 “(증원 백지화 선언 없인 대화도 없다는) 기존 대응 방침에서 달라질 게 전혀 없다”고 했다. 김창수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회장도 이날 본지에 “(비과학적인 정부 증원안이 아니라)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 증원이든 감원이든 하자는 기존의 저희 입장은 변함이 없다”고 했다. 전공의 단체는 이날 아무런 입장을 내지 않았다. 그동안 전공의들은 “증원안 원점 재검토”를 요구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