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경남 양산시에 있는 부산대 어린이병원은 5월 6일부터 매주 월요일과 화요일은 소아 응급실 야간 진료(오후 5시~이튿날 오전 8시)를 하지 않기로 했다. 야간 당직에 투입할 소아 응급실 의사 수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아청소년과 교수 28명 중 5명이 대신 당직을 서겠다고 자원하면서 정상 운영하기로 선회했다. 정재민(51) 부산대 어린이병원 원장은 4일 본지 통화에서 “응급실이 문을 닫으면, 자신이 진료하던 아이들이 갑자기 아플 때 갈 데가 없다며 교수들이 당직을 자청했다”고 했다.
이 병원은 2020년부터 교수 6명이 소아과 응급실 야간 당직을 전담했다. 병원이 2021년 부산·경남 지역에서 유일한 소아 전문 응급 의료 센터로 지정되면서 매년 7000명 정도였던 환자들이 지난해 연 1만8000명으로 급격히 늘었다. 부산·울산·경남은 물론이고 멀게는 전남·경북에서도 찾아왔다. 정 원장은 “야간 당직을 서고 나면 교수들이 녹초 상태가 됐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달 교수 1명이 그만두면서 야간 진료를 일부 중단할 계획이었다. 여기에 더해 지난 1일에도 교수 1명이 또 그만뒀다. 정 원장은 “소아 응급실을 전담하던 교수 6명이 ‘번아웃(극도의 피로)’을 호소하면서 당초 한꺼번에 그만두려다가 겨우 설득해서 근무해 왔으나, 결국 두 분이 차례로 사직을 결정했다”고 했다. 소아 응급실을 전담하는 교수 6명이 4명으로 줄어들었다. 공보의 1명이 투입됐지만, 역부족이었다. 정 원장은 “야간 진료 중단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고 했다. 그러자 응급실을 담당하지 않는 소아청소년과 교수 5명이 월·화 야간 당직을 하겠다며 손을 들었다. 일과 시간에는 본인 외래 진료를 보고, 야간에는 당직을 서는 것이다. 이들은 “내가 진료 보는 환자들이 한밤중에 응급실에 방문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는데, 이를 외면할 순 없다”며 자원했다. 정 원장은 “부산·울산·경남에서 마지막으로 찾는 병원인 만큼 어린이 환자, 보호자들이 야간에 치료받을 수 있는 소아 응급실을 못 찾아서 병원 여러 곳을 돌아다니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응급실을 지켜야 한다는 의견이 교수들 사이에서 많았다”며 “이미 집 근처 소아과 병원 3~4곳을 들렀다가 응급 진료를 받기 위해 우리 병원까지 오는 아이들의 엄마, 아빠들이 안심하고 병원을 나가는 모습을 보면 뿌듯한 마음이 들면서도 안쓰럽기도 하다”고 했다. 급한 불은 껐지만, 언제 다시 야간 진료가 중단되더라도 이상한 상황은 아니다. 정 원장은 “교수들이 지치는 시기가 오면 다시 소아 응급실 운영을 일부 중단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했다.
이번 상황은 전공의 이탈 사태와는 큰 상관 없이 언젠가는 닥칠 문제였다. 소아과 전문의가 가뜩이나 부족한 데다, 지방에서 소아 응급실을 전담할 수 있는 소아과 전문의를 찾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정 원장은 “이런 현상은 지난 10년간 이어져 왔고, 5년 전부터는 소아과 지원 자체를 기피하기 시작했다”며 “그렇다 보니 새로 배출되는 전문의 수가 적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소아과 전공의 5명이 모두 병원을 떠났고, 내년에 교수가 될 예정이었던 전임의마저 나가버려 상황이 더 악화된 것이다.
정 원장은 “저출생 영향으로 소아 환자 수가 감소하면서 진료할 대상이 사라지는 현실에 대한 걱정 때문에 소아과 지원자가 적고, 전문의들도 소아과 병원을 개업해도 운영하기 쉽지 않아 다른 직종으로 이전하는 경우가 많다”며 “아무리 좋은 조건을 내걸어도 일하기 힘든 대학 병원에서 근무하기를 꺼려한다”고 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성인 수가(건보공단이 병원에 주는 돈) 체계와 소아 수가 체계가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고도 했다. 소아 환자를 진료하면 할수록 적자가 생기는 구조 때문이다. 가령 성인 채혈(피를 뽑는 것) 수가가 100원이라면, 소아도 마찬가지다. 성인은 채혈하는 데 1분 걸린다. 어린이 환자를 채혈하려면 의료진 4명이 아이를 붙잡는 데 동원되고, 2~3번 시도하기도 한다. 하지만 같은 수가를 받는다. 정 원장은 “의사 수가 늘어나도 이러한 수가 체계가 바뀌지 않는다면 소아과 기피 현상은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