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공백이 이어지는 가운데 지난달 22일 대구시내 대학병원에서 한 환자 앉아있는 모습./뉴시스

이르면 이달 말부터 지금과 같은 보건의료 재난 경보 ‘심각’ 단계 동안 외국 의사 면허를 가진 사람들도 우리나라에서 진료·수술 등 의료 행위를 할 수 있게 된다. 집단 사직한 전공의들의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한 조치로, 외국 의사들은 정부 승인을 거쳐 수련병원 등 대형 병원에 배치될 전망이다.

보건복지부는 이런 내용을 담은 의료법 시행규칙 일부 개정안을 8일부터 20일까지 입법예고한다. 입법예고란 국회나 정부가 법을 만들거나 바꾸기 전, 새로운 법안 내용을 미리 국민들에게 공지하는 것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현재 보건의료 재난 경보 ‘심각’ 단계인 만큼 가급적 빠르게 추진해 5월 말에서 6월 초쯤 개정안이 시행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외국 의사 면허 소지자가 우리나라에서 의사가 되려면 복지부가 인정하는 나라에서 복지부가 지정하는 외국 의대를 나온 뒤, 외국 의사 면허를 따고, 한국 의사 면허 국가고시까지 봐야한다. 우리나라 국가고시 전에는 외국인만 보는 예비 시험도 치러야 한다. 그러나 앞으로는 보건의료 재난 경보 ‘심각’ 단계 동안 나라·학교 제한 없이 외국 의사 면허만 가지고 있으면 우리나라에 들어와 일정 기간 동안 의사 일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정부가 이처럼 법을 바꾸는 이유는 전공의 1만여명의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해서다. 따라서 외국 의사들은 전공의 빈자리가 발생한 수련병원 등 대형 병원에서 일정 계약 기간 동안 일을 하게 된다. 인력이 부족한 대형 병원 필수 의료과 등에 배치될 가능성이 높으며, 성형이나 피부 미용 등 분야의 개원가에서는 일할 수 없다. 병원 배치 전에는 복지부 심사도 거치게 된다. 복지부가 적합하다고 판단한 외국 의사만 각 병원의 외국인 의사 담당 전문의의 관리·감독 하에 진료·수술 등을 하게 된다.

정부는 전공의 집단 사직 이후 지난 2월 23일 보건의료 재난 경보(관심-주의-경계-심각)를 가장 높은 단계인 ‘심각’으로 끌어올려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보건의료체계가 ‘완전히 마비’됐다고 판단될 때, 심각 단계가 발령된다. 이 단계에서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설치해 총력 대응하게 돼있다. 코로나 같은 감염병이 아니라 의사 집단 행동 등 의료계발(發) 위기로 보건의료 재난 경보가 심각 단계까지 올라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