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3000명씩 배출되던 신규 전문의가 내년엔 ‘0′명이 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 2월 집단 이탈한 전공의들이 오는 20일까지 복귀하지 않으면 ‘수련 기간 미달’로 내년 전문의 시험을 볼 자격을 잃기 때문이다. 시험 자격을 잃는 고연차 전공의 절반은 생명과 직결되는 필수 진료과 전공의다.
7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대형 병원에서 수련 중인 전공의 중 가장 선임인 ‘레지던트 3·4년 차’는 내년 2월 전문의 시험을 보게 된다. 그런데 전문의 수련 규정상 수련을 안 받은 기간이 3개월을 초과하면 전문의 시험에 응시할 수 없다. 전공의들이 정부의 ‘의대 증원’ 발표에 반발해 병원을 떠난 건 지난 2월 20일 전후. 이 ‘3개월 초과’ 시점이 오는 20일쯤에 집중적으로 몰려 있다는 뜻이다. 이 기간을 넘기면 2026년 2월이 돼야 전문의 시험을 볼 수 있다. 의료계 인사들은 “오는 20일이 전공의 복귀 마감일”이라며 “이 시한이 지나면 전공의 상당수는 아예 복귀를 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이렇게 될 경우, 가장 큰 문제는 신규 전문의가 나오지 않으면 신입 필수 진료과 전문의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국 4년 차 레지던트는 총 2910명이다. 이들 중 필수 의료 분야 레지던트 수는 1385명으로 전체의 48%다. 내과 656명, 응급의학과 157명, 외과 129명, 소아청소년과 124명, 산부인과 115명, 신경외과 95명, 신경과 86명, 심장혈관흉부외과 23명 등이다.
상당수 전공의는 여전히 복귀를 고려하지 않는 분위기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대위원장은 “전공의 복귀 움직임은 없다. 달라진 건 없다”고 했다. 서울 대형 병원의 한 전공의도 “전문의 시험 자격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다”며 “그것 때문에 복귀하려는 움직임은 거의 없다”고 했다. 그는 또 “상당수 전공의가 전문의 취득 시점이 1년 지연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이렇게 되면 정부가 연일 강조하는 ‘전문의 중심 병원으로의 전환’ 계획도 더뎌질 수 있다. 이는 정부가 지난 2월 발표한 4대 의료 개혁 과제 중 하나다. 전공의 의존도가 높은 의료 체계를 개선해 ‘전공의는 수련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고, 환자에게는 질 높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취지다. 전문의 배출 시점이 뒤로 밀리게 되면 군의관, 공보의 배출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러나 정부는 전공의 집단 이탈로 인한 비상 진료 체제가 이미 가동 중이기 때문에 내년에 신규 전문의가 거의 나오지 않아도 현장 상황은 별로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본지 통화에서 “원래 전공의 본인들이 계획했던 것보다 최소 1년 뒤에 전문의가 되는 것”이라며 “전공의 최대 3000명 정도가 전문의 자격을 못 따기 때문에 단기적으로는 애로사항이 있겠지만, 길게 보면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서울 빅5 병원의 한 교수는 “오는 20일까지 고연차 레지던트들이 (병원에) 돌아오지 않으면 올해 영영 안 돌아올 전공의가 꽤 많을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지금 같은 상황이 더 길어지게 된다”고 했다. 영남 지역의 한 대학 병원 교수는 “우리 병원 소아청소년과에 고연차 레지던트들만 남아 있어서 이들이 전문의가 될 것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희망이 없다”고 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2월 브리핑에서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에 대해 최소 3개월의 면허정지 처분이 불가피하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복지부가 면허정지 기간을 ‘최소 3개월’로 명시한 것을 두고 의료계에서는 “석 달간 면허정지를 당하면 전문의 시험을 볼 수 없으니, 이를 통해 전공의를 압박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의료계는 이런 행정처분이 전공의를 더 자극해 병원 복귀를 늦출 것이라고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