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외국에서 의대를 나오고 의사 면허까지 딴 사람이 우리나라에서 의사가 되기는 쉽지 않았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실이 보건복지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의사 예비시험이 시행된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외국 의대 졸업 후 한국 의사 예비시험에 응시한 이들 중 합격자는 55%에 불과했다. 최종적으로 국내 의사 면허를 딴 사람은 33%에 그쳤다. 예비시험에 합격하려면 의학 기초 지식을 묻는 필기 시험과 모형 등을 이용한 실기 시험에 더해 한국어능력시험 고급 이상의 시험 점수도 인증해야 되기 때문에 언어 장벽이 크게 작용했다.

다만 의료법 시행규칙에서는 외국 면허 의사가 한국 면허를 따지 않고도 국내에서 의료 행위를 할 수 있는 3가지 예외 상황을 정해두고 있다. 외국과 우리나라의 의학 기술 교환 등을 목적으로 외국 의대 교수가 우리나라로 들어왔을 때, 외국 의사가 우리나라에서 의학 교육 관련 연구를 할 때, 외국 의사가 우리나라에서 의료 봉사를 할 때 등이다. 이마저도 복지부 장관의 승인을 받고 복지부가 정해준 범위 안에서만 의료 행위가 가능하다. 여기에 보건의료 재난 심각 단계일 경우가 추가되는 것이다.

그래픽=김성규

앞으로 보건의료 재난 심각 기간 동안 우리나라에서 일하고자 하는 외국 면허 의사들은 복지부에 수행하고 싶은 의료 행위 등을 담은 신청서를 제출하고, 복지부가 이를 심사한다. 이후 의사 인력이 필요한 병원과 복지부가 협의를 거쳐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는 범위 내에서만 외국 면허 의사들이 의료 행위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외국인 의사의 경우, 우리나라 의료진·환자와의 의사소통 문제는 수련병원마다 외국 면허 의사를 담당하는 지도 전문의를 지정해 해결할 방침이다. 수련병원 소속 지도 전문의는 외국 면허 의사들을 관리하고 지도하게 된다. 외국 면허 의사가 단독으로 의료 행위를 할 수는 없다는 의미다.

지금의 의정 갈등 상황이 해결되고 전공의들이 복귀하더라도, 보건의료 재난 단계가 심각으로 올라갈 때마다 이런 조치를 취할 수 있게 된다. 예컨대 2020년 2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는 코로나로 인한 보건의료 재난 심각 단계였는데, 비슷한 감염병 위기가 다시 찾아올 경우에도 외국 의사들을 우리나라에 한시적으로 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이번 의정 갈등 사태 이후 이야기가 오간 방안이지만, 앞으로 다른 위기 상황이 와도 이런 조치가 허용될 수 있다”고 했다.

의료계에서는 해외에서 의사 자격을 획득한 교포나 국내에서 외국 의대로 진학한 한국인이 주로 지원할 것으로 예상한다. 국내에선 헝가리·우즈베키스탄·영국 등으로 원정 유학을 많이 간다고 한다. 현재 정부는 전 세계 38국, 159개 의대(지난해 6월 기준) 출신 외국 면허 의사들에게 의사 국가고시 지원 자격을 주고 있다. 이들 국가에서 의사 면허를 취득한 한국인이 국내 대형병원에서 의료 활동 경험을 쌓으면 앞으로 국내 의사 자격증을 따기 위한 실기 시험에서 일정 부분 도움이 된다는 분석이다.

그동안 한국폐암환우회 등 환자 단체에서는 외국 의사 면허 소지자들이 한시적으로 국내에서 의료 행위를 하는 방안을 허용해 달라고 정부에 요청해왔다. 이건주 한국폐암환우회 회장은 지난 3월 “특정 국가에서 충분한 교육과 경험을 쌓은 의사들에게 정부에서 검증 절차를 거쳐 한시적 또는 제한적으로 의사 면허를 발급해달라”며 “근무 지역을 명시하고, 진료와 치료를 보조할 간호사를 함께 선발해 언어 문제를 해결하자”고 밝힌 바 있다.

반면 의료계 반응은 냉담하다. 임현택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본지 통화에서 “외국인 의사는 의사 소통도 잘 안 될 것”이라며 “환자 본인이 어디가 아픈지 정확하게 말해야 진단이 잘되는데, 진단 단계에서 잘못되면 제대로 된 치료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시행규칙 개정은 국민 의견을 받더라도 정부에서 결론을 정해놓고 일사천리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며 “(외국 의사 면허 소지자의 의료 행위는) 국민들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사안이기 때문에 국민들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내주셔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