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100개 주요 병원에서 지난 2월 20일을 전후해 병원을 떠난 전공의 가운데 지난 21일까지 복귀한 전공의는 600명대 후반이다. 전체 전공의(1만3000명)의 5%만 복귀한 셈이다. 이날까지 국내 5대 대형 병원인 빅5(서울대·서울아산·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성모)의 전공의 복귀 숫자도 10명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의료계에서는 “이제 전공의는 당분간 복귀하지 않는다고 보고 정부가 의료 현장 대책을 짜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전공의 집단 이탈로 ‘전공의 없는 병원’이 국내 대형 병원의 ‘뉴 노멀(new normal·새 표준)’로 자리 잡게 됐다는 뜻이다.
현재 중환자 치료를 가장 많이 하는 빅5 병원의 수술·입원은 전공의 이탈 전의 50~60% 수준으로 떨어졌다. 응급실과 수술실·입원실을 24시간 지키던 전공의들이 떠나면서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빅5는 전공의 이탈 전엔 각각 하루 200~250건의 수술을 했는데, 이탈 후엔 100건 초반으로 반 토막이 나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특히 빅5를 포함한 전국 47곳 상급종합병원(대형 병원)을 중환자·전문의 중심 병원으로 개편해 전공의 공백을 줄여나갈 계획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비상 진료 체계를 가동 중이다. 2차 병원(중형 병원)을 거친 환자만 대형 병원을 이용할 수 있게 하는 조치다. 대형 병원이 응급·중증 환자 치료를 전담할 수 있게 경증 환자의 진입 장벽을 높인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이 조치 후 대형 병원에 몰리는 경증 환자가 20~30% 정도 줄었다”고 했다.
정부는 또 대형 병원의 전문의 비율을 높여 앞으로 ‘수습 의사’인 전공의가 이탈해도 병원 가동에 문제가 없게끔 하겠다는 입장이다. 현재 빅5 근무 의사 중 전공의 비율은 40% 정도다. 미국과 일본(10%)의 4배 수준이다.
문제는 돈과 시간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병원급 근무 전문의의 연봉 평균은 약 3억3000만원이다. 전공의 중 레지던트는 7280만원, 인턴은 6882만원으로 최대 5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게다가 피부 미용, 노인성 질환 등과 관련된 개인 의원을 차린 개원의는 병원의 전문의(봉직의)보다 한 해 1억원 이상의 소득을 더 올린다고 한다. 대형 병원이 개원의보다 근무 시간은 많고 소득은 적은 전문의를 구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또 구한다 해도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건강보험 재정 외에도 국가 예산 등을 대거 투입할 계획”이라고 했다. 의료계 인사들은 “이탈한 전공의 30% 정도가 복귀한다면 대형 병원이 전문의 중심 병원으로 가는 시간을 어느 정도 확보할 수 있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했다.
정부는 중형 병원과 전문 병원에 대한 수가(건보공단이 병원에 주는 돈)도 올릴 방침이다. 대형 병원이 수용하지 못하는 환자들이 이곳에서 치료받을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전국 주요 병원 200여 곳 중 전공의 비율이 높은 곳은 50곳 정도”라며 “전공의 비율이 낮은 150곳 병원이 향후 중환자 수술·입원을 많이 하도록 지원을 강화할 것”이라고 했다. 실제 대형 병원 진료가 막히면서 요즘 중형 병원은 환자 수가 평시보다 10~15% 증가했다.
심·뇌혈관, 산부인과 등 생명과 직결된 필수 진료를 하는 전문 병원의 수가도 올릴 방침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덕수 총리는 최근 각각 수도권의 심장 전문 병원과 뇌혈관 전문 병원을 방문해 “대형 병원 수준으로 수가를 올리겠다”고 했다. 의료계 일각에선 “전국 109개 전문 병원 중 40% 정도는 관절 등 근골격계 전문이어서 대형 병원의 중환자 치료 기능을 대신하긴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공의·전문의·전임의
의대를 졸업하고 국가고시를 통해 의사 면허를 받은 사람을 ‘일반의’라고 한다. ‘전공의’는 의대 졸업 후 전문의 자격을 따기 위해 종합병원 등에서 수련하는 인턴과 레지던트를 말한다. 레지던트를 거친 뒤 특정 분과에서 자격을 인정받으면 ‘전문의’가 된다. 이후 대형 병원에서 1~2년 세부 전공을 공부하며 진료하는 의사를 ‘전임의’(펠로)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