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병원 외과 교수도 의료 사고 소송에 대한 부담으로 응급 환자를 수술할지 말지 망설일 때가 있어요.”

지난 25일 분당서울대병원 대강당에서 열린 대한외과학회 대토론회에 모인 대한민국 최고의 ‘칼잡이’들 사이에서 나온 얘기다. 이제까지 최소 수백에서 수천 명씩 목숨을 살렸다는 대장항문외과, 유방외과, 간담췌이식혈관외과 등 전문 분야 교수들이다. 이들은 “소송에 대한 과도한 부담이 외과를 기피하게 만드는 한 요인이 되고 있다”며 “불가항력에 가까운 의료 사고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했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에 따르면, 의료 분쟁 조정 신청 접수 건 가운데 의료 행위별로 수술(45.9%)과 처치(20.8%)가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거의 매일 수술이 이어지는 외과 의사들이 의료 분쟁에 휘말릴 가능성도 높다는 뜻이다. 의협에 따르면, 한 해 외과 의사 50명 중 1명꼴로 의료 분쟁을 겪는다.

이날 소송에 휘말리는 한 사례로 ‘장폐색’ 수술이 화제에 올랐다. 장폐색은 소장이나 대장 일부가 막혀 음식물 등이 빠져나가지 못하는 질환으로 즉시 수술하지 않으면 사망할 수 있다. 한 참석자는 “몇 년 전 장폐색 수술을 받은 환자가 장벽에 구멍이 생기자 ‘수술이 늦었다’며 담당 의사를 과실 치상으로 소송을 건 사례가 있었지만 의사가 최선을 다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후 의료 현장에서는 장폐색 수술에 대해 (수술 여부 등을) 망설이는 분위기도 생겼다고 한다”고 했다.

외과학회 정책위 간사를 맡고 있는 정윤빈 세브란스병원 교수는 발제를 통해 “정부가 도입하기로 한 ‘필수 의료 정책 패키지’에 담긴 의료 사고 부담 완화 대책 적용 범위를 외과에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현재 분만 사고와 소아 진료 등에 대해서는 의료 사고 보상 지원을 강화하고 반의사불벌죄로 간주해 의사들의 형사처벌 부담을 덜어주는 정책이 추진되고 있는데, 여기에 외과 수술도 추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익용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교수는 “최선을 다해 수술했고 불가항력에 가까운 사고였다면 의사를 처벌하는 것이 능사인지 검토와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