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에 반발하는 의대생들의 집단 휴학이 이어지고 있는 지난 3일 대구 한 의과대학 강의실에 의사 가운이 놓여 있다./연합뉴스

정부는 진료 현장을 이탈한 전공의 1만명에게 내린 복귀 명령을 해제하고, 전공의들이 제출한 사직서를 각 병원이 수리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안을 4일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3일 “전공의들의 복귀를 유도하기 위해선 사직서 수리 금지 조치를 풀어줘야 한다는 의료계 요청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며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4일 오후 전공의들에게 내린 진료 유지·업무 개시(복귀) 명령과 각 수련 병원에 내린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을 해제한다는 발표를 할 예정”이라고 했다.

정부 발표 이후 각 대학병원의 병원장은 미복귀 전공의들의 의향을 물어 떠나기를 원하는 전공의의 사표는 수리할 전망이다. 이렇게 되면 일부 전공의는 복귀를 하거나 병원을 옮겨 수련을 이어갈 수 있다. 대형 병원을 떠나 일반의(전문 분야가 없는 의사) 신분으로 소형 병원에 취업하거나 개원할 수도 있다.

그래픽=이철원

정부는 ‘전공의 사표 수리’가 현시점에선 더 이득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의료 정상화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의대 증원에 반대해 지난 2월 20일 전후로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이 복귀하는 것이다. 정부는 그동안 거의 매일 전공의 복귀를 호소하고, 미복귀 전공의에 대해선 ‘선처 없는 처벌’을 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전공의 이탈 101일째였던 지난달 30일, 전국 수련 병원 211곳의 복귀 전공의는 879명으로 전체의 8.4%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에서 전공의 사표 수리가 전공의 복귀에 더 도움이 된다고 본다는 것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복귀를 원하지만 동료들의 눈치를 보느라 복귀하지 못한 전공의가 20%가량(2000여 명) 된다고 추정하고 있다”고 했다. 정부는 여기에 원래 수련하던 병원에선 사직하더라도 병원을 옮겨 수련을 이어갈 전공의도 적지 않다고 본다. 정부 내에선 “이런 경우까지 합치면 전공의 복귀율이 50%(5000여 명)에 육박할 수 있다” “전공의 절반 복귀가 목표”라는 얘기도 나온다.

특히 고난도 응급·중증 환자 수술을 많이 하는 ‘빅5(국내 상위 5곳 병원)’의 전공의 충원율이 높아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현재 빅5 전공의 대부분이 이탈했다. 이로 인해 중환자 수술·입원은 거의 반 토막이 났고, 빅5는 이번 의료 파행의 진원이 됐다.

그래픽=이철원

그런데 다른 수련 병원 전공의 중에는 빅5에서 수련한 뒤 전문의 자격을 따고 싶어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빅5 소속 전공의 대부분이 사직하면, 이들 병원은 곧바로 전공의 모집 공고를 내게 된다. 이 경우 빅5에서 수련하고 싶었던 다른 병원의 사직 전공의가 몰려들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정부는 전공의 ‘사표 수리 거부’는 이젠 득보다 실이 더 크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미 내년도 의대 정원 확대는 최종 확정됐다. 또 원칙적으로 3~4년 차 레지던트인 전공의들이 내년 초 전문의 자격 시험을 치르기 위해 복귀해야 했던 마지노선인 ‘5월 21일’도 이미 지났다. 전공의들이 조속히 복귀해야 할 유인이 사라진 상태에서 사표 수리를 계속 거부하면 무엇보다 병원을 지키고 있는 의대 교수들을 자극할 수 있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은 “(사직) 전공의들의 (경제) 사정이 너무 어렵다. 정부가 사직서 수리를 안 해주는 것은 정말 치사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전공의 사표 수리가 전공의 복귀율을 높일 것이란 정부 전망에 회의적인 시각도 많다. 최근 전임의(세부 전공 중인 전문의) 복귀율은 70%를 넘었지만, 이 중 다수는 생명과 직결된 필수 진료과 의사가 아닌 비필수 진료과 의사라고 한다. 서울아산병원의 한 교수는 “내과, 신경외과, 흉부외과, 응급의학과 같은 필수 진료과 전공의 다수는 ‘힘든 수련 생활을 더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고 했다. 필수 의료 의사들은 복귀하지 않고, 전체 복귀율만 올라가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법 적용의 불공정 문제도 불거질 수 있다. 정부가 100일 넘게 환자를 떠나 현행법을 어긴 전공의들이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개원의 업계로 가도록 면죄부를 줬다는 문제 제기가 생길 수 있다. 정부가 최근 의료계 반발을 의식해 각 대학이 의대 증원분의 50%까지 줄일 수 있도록 ‘자율 모집’을 허용한 데 이어 ‘예외 없는 처벌’이란 법 원칙도 깨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원래 근무 병원으로든, 다른 병원으로든 끝까지 복귀하지 않은 전공의에 대해선 불이익을 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사직서 수리 문제와 미복귀 전공의 처벌 문제는 별개”라고 했다.

한편 빅5를 비롯한 대형 병원장들은 최근 복지부 고위 관계자를 만나 “2025학년도 의대 정원은 확대하더라도, 2026학년도 의대 정원부터는 원점에서 재논의하자”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공의·전문의·전임의

의대를 졸업하고 국가고시를 통해 의사 면허를 받은 사람을 ‘일반의’라고 한다. ‘전공의’는 의대 졸업 후 전문의 자격을 따기 위해 종합병원 등에서 수련하는 인턴과 레지던트를 말한다. 레지던트를 거친 뒤 특정 분과에서 자격을 인정받으면 ‘전문의’가 된다. 이후 대형 병원에서 1~2년 세부 전공을 공부하며 진료하는 의사를 ‘전임의’(펠로)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