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들이 6일 총파업을 결의하면서 낸 입장문 2300자에는 정부를 향한 실망과 분노가 서려 있다. ‘불통과 강압’ ‘무도한 처사’ ‘개인 자유를 헌신짝처럼 여기는 정부’ 같은 표현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그 분노를 걷어내면 “정부가 모든 전공의에 대해 진료유지·업무개시명령을 완전히 취소하고, 현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시적 조치를 취할 때까지 전면 휴진할 것”이란 내용만 남는다.

‘가시적 조치’가 무엇인지, 조치 후 교수들은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아무런 내용이 없다. 책임 소재를 따지기 전에 정부는 일단 전공의 복귀를 위해 의료계 요청에 따라 각종 행정명령을 철회하고 한발 물러섰다. 그런데 국민 세금 등이 투입되는 대한민국 대표 공공의료기관 소속 교수들은 스스로의 역할과 책임에 관해선 아무 언급 없이 “환자들을 떠날 것”이란 선언만 한 모양새가 됐다. 진료 연기에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환자와 국민은 그래서 이번 입장문에 고개를 끄덕이기 어렵다.

의정 갈등 사태가 장기화한 데는 정부의 책임도 크지만, 의대 교수 단체 또한 의료 정상화에 제대로 역할을 못 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정부와 의료계 간 불통만큼 교수와 전공의 간 소통도 단절된 지 오래다. 한 서울의대 교수는 “정부 비판에 앞장섰으나, 전공의들 마음을 얻지 못했고 소통에 실패한 점을 인정한다”고 했다. 서울의대 교수들이 정부를 향해 구체적 요구 없이 ‘합리적·가시적 조치를 취하라’고만 하는 것도 어떻게 해야 전공의들이 돌아올지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교수들이 전공의와의 소통 등으로 사태 수습에 나서기보다 정부 비판에만 앞장서면서 실타래는 더 꼬이고 있다. 일부 전공의는 지난 4일 정부의 사직 허용 발표 직후 병원 복귀 의사를 밝혔다가, 서울의대를 비롯한 교수들의 파업 기류에 복귀를 보류하기도 했다.

그간 서울의대 교수들이 환자와 한국 의료를 위해 흘려온 땀을 국민이 모를 리 없다. ‘제자 지키려 환자를 떠나겠다’는 입장문에 실망한 것은 정부를 지지해서가 아니다. 교수들이 환자를 지키고 의료 정상화에도 앞장서 줄 것이란 기대와 신뢰가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이번 입장문이 차라리 ‘전공의 행정처분을 아예 없던 일로 해달라. 대신 우리 교수들은 환자 곁을 지키면서 전공의들과 소통하고 의료 정상화를 위해 역할을 다하겠다’는 내용이었다면 어땠을까. 그게 스승으로서 제자에게 책임 있는 자세이자, 많은 이들이 서울의대 교수들에게 기대한 모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