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AI(인공지능) 시대엔 ‘집’이 1차 의료 시설이 될 것이다. 집에서 수집되는 생체 정보 데이터를 AI로 분석해 개인 건강 상태를 진단하고, 상담·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혁신적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11일 서울 강남구 한국고등교육재단에서 열린 ‘AI 시대, 의료의 길을 묻다’ 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한 홍윤철 서울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스마트 미러(거울)가 AI 기술로 혈관과 체온, 근육 움직임을 통해 건강 상태를 모니터링하고, 스마트 침대·변기 등으로 발병 위험까지 예측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비영리 싱크탱크 태재미래전략연구원과 조선일보가 공동 주최한 이날 포럼에선 홍 교수를 비롯한 참석자들이 AI 발전으로 달라질 우리 의료의 모습과 과제에 관해 토론했다.
홍 교수는 “2050년 기준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40%인데, 이들이 서울 빅5(주요 5대) 병원을 찾아가게 할 것이 아니라 데이터 기반 의료 서비스가 집과 지역 커뮤니티에서 이뤄지는 방향이 돼야 한다”고 했다. 홍 교수는 ‘네트워크 의료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컨대, ‘스마트홈(집)’에서 개인의 생체 정보를 모으고, 이렇게 모인 데이터가 지역 내 ‘스마트 건강 관리 센터’로 가서 환자 상담과 가정 간호 서비스에 활용된다. 그리고 스마트홈과 건강 관리 센터에서 생성된 데이터를 각급 병원까지 공유한다는 것이다. 홍 교수는 “데이터로 연결되는 지역 단위 의료 체계를 구성하면 지역 의료 격차 문제도 해소할 수 있다”고 했다.
나군호 네이버 헬스케어연구소장은 “마이크로소프트가 AI 음성 인식 기술 기업 ‘뉘앙스’를 인수한 지 2년 만에 미국 3000개 병원에서 의무 기록 작성 등에 이 서비스를 사용한다”며 “독거노인 고독사 예방을 위한 네이버의 ‘클로바 케어콜’처럼 AI 기술이 초고령 사회 등 국가적 과제에 대비하는 수단이 될 수 있는 만큼 의료계도 보다 넓은 시야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했다. 나 소장은 세브란스병원 비뇨의학과 교수 출신으로 로봇 수술의 권위자다.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 ‘웰트’의 강성지 대표는 “어떤 사람이 커피를 마시고 지불한 ‘결제 데이터’가 ‘이 사람은 불면증 환자’라는 정보와 만나면 AI가 ‘오후 커피는 수면에 좋지 않다’는 가이드를 줄 수 있다”며 “환자가 두 달에 한 번 의사를 만나 진료를 받는다고 할 때, 그 간격을 메우는 데도 AI를 활용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이날 토론자들은 “AI 기술 기반은 충분하지만, 과제도 적지 않다”고 했다. 개인 정보 활용 문제와 AI 분석·진단의 정확성 문제다. 의료 AI 기업 루닛의 박선영 실장은 “글로벌 디지털 헬스 시장 규모가 급속도로 커지고 있는데, 국내에선 각종 데이터 관련 규제로 기술 활용에 어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데이터 종류별로 세분화된 지침을 정해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
홍윤철 교수는 “의료 AI는 100가지 분석 결과 중 하나만 잘못돼도 못 쓰기 때문에 정교함이 생명”이라며 “기존 의학 정보 등을 기초로 해서 신중하고 엄격한 기준 아래 활용할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