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 교수들이 17일부터 무기한 전체휴진을 예고한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 병원 후문 앞 에서 열린 한국중증질환연합회 주최 휴진 중단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발언하고 있다./고운호 기자

“저희가 아픈 걸 선택했나요? 그저 살다보니 병을 얻은 건데 치료 기회조차 없습니다.”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한국다발골수종환우회 등 6개 단체가 속한 한국중증질환연합회 회원들은 12일 오전 11시 서울대병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서울대병원 교수 비대위가 오는 17일 수술과 진료를 중단하는 전면 휴진을 벌이겠다고 예고하자 자제를 호소하기 위해 중환자와 그 가족들이 모인 것이다.

식도암 4기 환자인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장은 기자 회견문을 통해 “서울대 의대 교수님들은 환자의 생명과 불법(집단행동을 한) 전공의 처벌 불가 요구 중 어느 것을 우선하시느냐”며 “치료 골든 타임을 놓친 저희 중환자들은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했다. 그는 “우리 환자 단체들은 중환자 피해 사례가 아니라 중환자 사망 사례를 접수할 처지에 놓였다”며 “중환자들이 하루하루 죽음의 공포에서 연명해가던 희망의 끈을 놓아야 할,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다”고 했다.

28년째 루게릭병으로 투병 중인 김태현 한국루게릭연맹회 회장은 “우리 희소 중증 질환자들은 (전공의 이탈 후) 100일 넘게 천당과 지옥을 오가며 생사의 갈림길에서 신음하다 지옥의 끝자락으로 먼저 간 운명 공동체 환우들이 너무 애통스럽다”고 했다. 김 회장은 “우리 희소 중환자들은 이미 의학적으로 사망 선고를 받아 시한부로 사는 인생”이라며 “사는 그날까지 고통스럽게 살아가느냐, 의학 치료로 편안하게 살다 죽느냐의 차이밖에 없다”고 했다. 이어 “질병으로 인해 우리들은 치료비, 경제적 부담으로 가정 경제가 파산되고 가족이 해체돼 돌이킬 수 없는 처지”라며 “그래도 살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우리들이 먹고 숨 쉴 수 있게, 목숨을 연명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변인영 한국췌장암환우회 회장은 “교수님들이 지켜야 할, 살릴 수 있는 환자가 지금 죽어가고 있다”며 “이 사태가 진정되어도 지난 100여 일의 여파로 많은 중환자들이 (병세가) 악화돼 (세상을) 떠나게 될 것을 (교수님들은) 알고 있다”고 했다. 그는 “(서울대병원 등은) 4기 환자들을 호스피스(죽음을 앞둔 환자 입원 시설)로 내몰고 긴급한 시술을 2차(중형) 병원으로 미루고 항암 치료와 수술도 연기했다”고 했다. 이어 “그래도 참고 기다렸다. 사랑하는 엄마가, 아빠가, 아내가, 남편이, 자식이 죽어가도 숨죽여 기다렸다. 매일 조여오는 죽음의 두려움 앞에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이 사태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결과가 교수님들의 전면 휴진”이라며 “교수님들은 저희들의 생명을 담보로 무엇을 얻으려고 하시느냐. 대체 무엇이 생명의 가치를 뛰어넘는 것인가”라고 했다. 그는 “중환자들은 오늘 하루의 치료가 생명과 직결돼 있다. 병을 이겨 내리라는 굳은 신념조차 무너져 간다”며 “부디 아픈 환자들이 치료의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해달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했다.

한편 보건의료노조는 이날 오후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5000여 명이 모인 ‘총력 투쟁 결의 대회’를 열고 의사들의 집단 휴진 움직임을 비판했다. 최희선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의사들이 또 명분 없는 집단 휴진을 한다고 한다”며 “환자들은 치료를 받지 못해 죽어가고 있고, 병원의 경영난 심화로 인한 피해는 (간호사 등 병원) 노동자들에게 집중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