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천안 단국대병원 병동에서 김정애(왼쪽)씨가 폐 기능 이상 등으로 입원한 23세 딸 박하은씨를 안고 있다. 남편과 사이에서 두 딸과 아들을 낳고 기른 김씨는 2001년 희소 유전병을 갖고 태어난 하은씨를 넷째로 입양했다. /안준용 기자

충남 홍성에 사는 김정애(68)씨는 2001년 딸 박하은(23)씨를 입양했다. ‘코넬리아드랑게 증후군’이란 유전병을 갖고 태어난 하은씨는 지금도 3세 수준 지능에 양손은 손가락이 하나씩만 있고, 제대로 걸을 수도 없는 중증 장애를 갖고 있다. 그런 하은씨를 남편과 함께 23년간 길렀다. 하은씨는 폐 상태가 나빠 호흡 곤란 등 위급 증상이 수시로 찾아온다. 그때마다 홍성에서 119구급차를 타고 한 시간 반 거리에 있는 천안의 대학병원으로 달려간다. 한 번 입원하면 2~3주씩 치료받는다.

김씨는 의정 갈등 사태 이후 매일 밤잠을 설친다. 딸이 갑자기 생사의 갈림길에 서게 됐을 때 의료진의 도움을 받지 못할까 봐 불안하다고 했다. 지난 4월엔 응급실에 도착해서도 환자를 볼 의료진이 없어 한 시간 가까이 대기한 적이 있다. 김씨는 지난 1일 “의사 선생님들, 그리고 정부 분들과 국회의원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A4 5장 분량 자필 편지를 본지에 보내왔다.

그는 “세브란스병원·아산병원 의사 선생님들도 휴진한다는 얘기를 듣고 환자 가족으로서 너무나 답답하고 애타는 마음”이라며 “우린 정부 편도, 의사 편도 아니다. 아플 때 치료받을 수 있는 권리, 원하는 건 그것뿐”이라고 했다. 또 “누구도 우리 환자들의 생명을 볼모로 삼으면 안 된다”며 “두 번 다시 우리 대한민국에서 환자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의사 파업은 없도록 원칙을 세워달라”고도 했다.

아래는 김정애씨가 보내온 편지 전문.

<전문>

안녕하세요. 저는 충청도 홍성에 살고 있는 68세 하은이 엄마 김정애입니다.

저는 24년 전 폭설 피해로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기도드리면서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실 일을 하며 살겠다고 서원했습니다. 그때 천안 단국대병원에 2.1kg 미숙아가 세상 빛을 보게 됐습니다. ‘코넬리아드랑게’라는 희소병으로 사지기형, 지적장애, 걷지도 말하지도 못하고, 양팔 기형에 손가락이 하나씩 있어 혼자선 아무것도 못하는 아기 천사입니다. 저의 목사님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을 것 같다며 아기 이름을 ‘하은’이라 지어주셨습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했나요? 두려움이 앞섰지만 용기를 냈습니다. 태어난 지 두 달 후 한 전공의 선생님이 하은이를 제 가슴에 안겨주셨습니다.

우린 이렇게 엄마와 딸이 됐고, 23년을 하은이 재롱을 보며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아프게 태어난 하은이는 수시로 제 마음을 애태웠고, 그때마다 의사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위험한 고비를 수없이 넘기며 살아왔습니다. 우리 하은이는 제 인생의 전부입니다. 제 인생의 마지막 기도는 하나님께서 데려가실 때 하은이를 하루 먼저 데려가시고 다음날 제 생이 다하도록 해달라는 것입니다.

의사 선생님. 지금까지 하은이를 살려주셔서 고맙고 감사드립니다. 하은이는 앞으로도 의사 선생님들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의정갈등’이 어느덧 5개월이 됐습니다. 우리에겐 50년 같은 5개월이었습니다. 의정 갈등에 우리 환자들은 죽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의사 선생님들의 파업으로 제 딸이 치료 못 받고 저와 이별할까 봐 오늘이,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렵고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임현택 의협 회장님께 호소 편지를 보냈고 만나뵀습니다. 갈등은 지도부의 선생님들이 정부와 대화로 풀어나가시고 의사 선생님들을 설득하셔서 환자 곁으로 돌아오시게 해달라고 눈물로 호소드렸지요. 분명 정부와 대화해보고 해결되도록 노력하겠다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나 ‘휴진’이란 파업을 발표하신 것을 보고 하은 엄마로서 최선을 다해보자는 마음으로, 어찌 표현할 수 없이 화도 나고 간절한 마음을 삭발로 나타내게 됐습니다. 6월 13일 국무총리님도 만나뵀습니다. 끝까지 대화하시겠다는 약속도 해주셨습니다. 무지한 하은 엄마라 의정 모두에게 ‘우리 환자들이 당신들의 아들딸이라도 이렇게 방관하고 입으로만 죄송할 수 있겠느냐’며 큰소리쳤습니다만 분명한 것은 누구도 우리 환자들의 생명을 볼모로 삼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국회의원님들! 21, 22대 의원님들이 즐겨 외치시는 국민의 목소리, 민생을 듣고 책임 있는 의정을 하시겠다고 호언장담하셨지요. 과연 지금껏 무엇을, 국민 대표로서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하고 계신지요. 국민의 생명이 연관된 제일 중요한 사안 아닌가요. 그동안 무엇을 얼마나 애쓰셨나요. 제 눈에 거대 야당은 힘자랑 하시면서 여당과 밥그릇 싸움, 자리싸움만 하신 것으로 보였습니다. 아니면 아니라고 당당히 말씀하실 수 있습니까. 이건 분명 직무유기입니다. 말로만 매번 국민을 위하고 국민의 뜻이라 핑계 대지 마세요. 옳고 그름은 우리 국민이 판단할 것입니다.

우린 정부 편도, 의사 편도 아닙니다. 그냥 아플 때 아무 걱정 없이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을 원할 뿐입니다. 두 번 다시 우리 대한민국에서 환자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의사 파업은 없도록 법안으로 원칙을 세워주시길 바랍니다. 국회의원님들은 보여주기식이 아닌, 진정으로 국민을 위하시는 마음으로 하나가 돼 중재자 역할에 충실해주시고,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도 둘째도 국민이란 점을 잊지 마세요. 의협 집행부도 지금껏 직무유기를 했습니다. 지난 2월부터 전공의 선생님들을 위해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이제 ‘휴진’이란 무기를 들고 정부와 환자들을 압박하고 계십니다. 우리 환자들 항의와 여론(국민) 반발에 이것 역시 부담스러워 6월 26일 ‘대토론회’란 명분 아래 “참석자는 불가피하게 휴진할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십니까. 당당하게 정부와 대화해주세요. 전공의 선생님들을 위해서. 전공의 선생님들은 환자 곁으로 돌아와 주세요. 그래야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의정은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배려·양보하며 진솔한 대화로 임해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이것이 국민의 명령입니다. ‘환자가 없으면 의사도 필요 없다. 국민이 죽고 없으면 국가 역시 필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