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이른바 ‘탈시설’ 정책으로 장애인 거주 시설을 나온 중증 장애인 54명을 조사해보니, 6명(10.9%)이 퇴소 후 3년 안에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탈시설은 장애인 거주 시설에 있는 장애인들을 내보내, 지역사회에서 살게 하는 것이다. 탈시설은 일부 장애인 거주 시설에서 장애인 학대가 벌어지고, 시설 수용이 장애인의 존엄을 침해한다는 비판이 일면서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국내에선 출근길 지하철 탑승 시위를 주도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등이 탈시설 정책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일부 장애인 가족 단체는 탈시설이 ‘24시간 돌봄’의 부담을 장애인 가족들에게 지우는 정책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서울시 조사 결과를 입수한 국민권익위원회는 “발달장애의 특성이 고려되지 않은 탈시설로 심각한 인권침해가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8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시는 2021년 4월 폐지된 경기 김포시의 장애인 거주 시설 ‘향유의 집’을 나온 장애인 중 54명을 추적 조사했다. 전원이 중증 장애인이었고, 대다수가 지적 장애, 자폐성 장애 등 발달장애를 갖고 있었다.

서울시가 지난해 2월 이들의 상태를 확인해보니, 6명이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하지 척수 마비 장애인이었던 A(68)씨는 2021년 퇴소한 지 한 달 만에 욕창에 걸렸으나 뒤늦게 발견됐다. A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패혈증으로 3개월 만에 숨졌다. 지적 장애가 있는 B(47)씨는 가족이 없는 무연고 상태였지만 2021년 시설에서 내보내졌고 같은 해 사망했다. 지체 장애인 C(51)씨도 2019년 퇴소 후 3년 만에 숨졌다. 다른 3명은 언제 어떻게 숨졌는지도 확인되지 않았다.

사망자를 제외한 49명 중 4명은 다른 시설로 갔고, 7명은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나머지 38명은 서울시 지원 주택에서 ‘자립’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중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람은 9명뿐이었다. 다른 9명은 고갯짓이나 ‘네’ ‘아니오’ 정도의 말만 가능했고, 20명은 의사소통이 아예 불가능했다. 그런데도 16명의 퇴소 동의서는 장애인 본인이 자필 서명을 하거나 도장을 찍은 것으로 돼 있었다. 일부 장애인은 주민센터에 인감을 등록하고 인감 증명서를 발급받기까지 한 것으로 돼 있었다.

서울시는 지난해 7월 이 조사 결과의 일부를 공개하면서 6명이 이미 사망했다는 것과 생존 장애인들의 퇴소 서류가 의심스럽다는 것은 공개하지 않았다. 조사 결과를 입수한 권익위는 숨진 장애인들이 시설에 계속 있었다면 24시간 돌봄을 받아 사망에 이르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봤다. 권익위는 또 “발달장애인의 시설 퇴소 결정이 전문의의 판단·소견 없이 맹목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각 발달장애인에게 24시간 돌봄이 필요한지, 자립 생활이 가능한지를 전문의가 판단하는 절차가 무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권익위는 또 “발달장애인들이 현재 상태로는 장애인 지원 주택 신청과 계약서 작성이 도저히 불가능한데도 지원 주택에 입주하고 있다”며 누군가가 주택 계약을 위해 장애인의 인감을 대리로 등록하고 있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권익위는 장애인 지원 주택을 운영하는 사업자가 장애인 활동 지원 기관을 함께 운영하면서 “장애인 공급 기관”이 되고 있다고도 비판했다. 시설에 살던 장애인을 퇴소시켜 지원 주택으로 ‘유치’하면,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돌봄 사업까지 수주해 정부 예산을 타낼 수 있는 구조라는 것이다.

권익위는 오는 10일 국회에서 이런 분석 결과를 공개하고, 탈시설 정책 및 발달장애인 돌봄과 관련한 제도 개선을 관계 부처에 권고하는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다.

☞탈시설

장애인 거주 시설에 있는 중증 장애인들을 내보내, 지역사회에서 비장애인들과 함께 살게 하는 정책. 일부 장애인 거주 시설에서 장애인에 대한 학대가 벌어지고, 장애인들을 특정 공간에 몰아넣어 사회에서 잘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 차별을 지속시킨다는 비판이 일면서 추진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2016년 서울시가 탈시설 정책을 시작했고, 2021년 문재인 정부가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 지원 로드맵’을 채택하면서 본격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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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론보도] <탈시설 장애인 추적해보니… 죽거나 의사소통 불가> 관련

위 기사에 대해 향유의집 측은 “자체 조사한 결과로는 사망자 숫자는 6명이 아니라 4명이고, 가정복귀도 7명이 아닌 1명, 전원도 4명이 아닌 8명 등으로 다르고, 사망 원인도 보도 내용과 차이가 있다. 또한 인감 등록 및 발급은 대리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향유의집과 무관하다”고 알려왔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