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서울시내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과 환자가 이동하고 있다./뉴시스

정부가 최근 서울에 몰려 있는 유명 대학 병원들의 ‘수도권 분원(分院)’ 7곳 건립에 제동을 건 것은, 방치할 경우 지방 병원 의사·환자들의 수도권 쏠림 현상이 가속돼 지역 의료가 고사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불허 방침을 밝힌 대학 병원(6곳) 산하 수도권 분원 7곳의 병상은 총 4800개다. ‘빅5(5대 대형 병원)’ 병상(약 1만개)의 절반에 육박한다. 서울·경기·인천 소재 대형 병원 병상(약 3만개)의 16%가 한꺼번에 늘어나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4800병상의 대형 수도권 분원 7곳엔 의사 2100명, 간호사 5700명 정도가 필요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했다.

충남대병원의 한 교수는 “지방 병원의 교수와 간호사들이 교육·교통 인프라가 잘 갖춰진 수도권 분원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며 “지역 병원은 의료진도 환자도 없는 빈집이 될 것”이라고 했다. 실제 수도권 분원 7곳 가동에 필요한 의사 수(2100명)는 지방 국립대병원 9곳의 교수 총원(1262명)의 1.6배다. 국립대병원 교수를 모두 빨아들이고도 남는다는 뜻이다. 지금도 지방 종합병원엔 의사가 없어 첨단 장비를 포장지도 뜯지 못한 채 방치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경남도립 병원인 마산의료원은 2019년 1억7700만원을 들여 운동 부하 검사기(피로도 확인 기기)와 홀터 심전계(부정맥 진단기) 등 장비 3대를 들였지만, 의사가 없어 지금까지 제대로 가동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픽=김성규

비수도권 환자도 블랙홀처럼 빨아들일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경남의 한 종합병원장은 “수도권 대형 분원의 의사들이 일주일에 이틀, 하루 30명 외래 환자를 본다고 가정하면 매일 2만5000명을 보게 된다”고 했다. 병원약학교육연구원의 작년 조사에 따르면 비수도권 병원(의원 제외) 91곳의 일평균 외래 환자 수는 1121명 수준이었다. 수치로만 보면, 수도권 분원 7곳이 지방 병원의 외래 환자 대부분을 흡수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지금도 서울 빅5 병원 암 환자의 40%(매년 20만명)는 지방 거주 환자”라며 “유명 대학 병원들이 수도권 분원 7곳을 더 설립하면 지방 병원들은 줄도산이 날 것”이라고 했다.

분원을 설치하려다 정부 반대에 부딪힌 대학 병원 6곳 관계자들은 “충격적 조치” “소송할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A대학 병원 관계자는 “이미 1만평 넘는 분원 부지 매수 계약을 했다. 난감하다”고 했다. B대학 병원 관계자는 “이미 (분원 건설 관련) 발주를 했는데 지금 와서 어떻게 되돌릴 수 있느냐”며 “사전에 복지부와도 협의한 것으로 아는데 이렇게 되면 소송으로 갈 수도 있다”고 했다. C병원 측은 “아직 착공은 안 했지만, 이미 관할 지자체와 합의 각서까지 다 쓴 상황”이라고 했다.

정부가 수도권 7곳에 대형 병원들이 분원을 설립하는 데 제동을 걸고 나섰다. 수도권에 대형 병원이 너무 많이 들어서면 지방 환자나 의사를 흡수해 지역 의료가 붕괴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사진은 비어있는 한 지방 병원 병실. /김동현 기자

의료계에선 “정부가 지금까지 이 문제를 방관하다가 올 초 의료 파업으로 지방 의료 붕괴 문제가 불거지자 급히 수습에 나선 것”이란 지적이 나왔다. 정부는 올 2월 의대 증원 직전에 ‘필수 의료(지원) 패키지’ 정책을 발표했다. 증원에 반발하는 의료계를 달래기 위한 차원이었다. 정책의 핵심은 지방에 사는 중환자도 그 지역에서 최적의 필수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지역 완결형 의료 구축’에 10조원 이상 건보 재정을 투입하겠다는 것이었다. 이와 함께 지방 국립대병원 교수를 1000명 더 뽑고, 지방에 계속 머무는 의사에게 주거 지원 등을 하겠다는 ‘지방 의료 살리기’ 대책을 쏟아냈다.

의료계 인사들은 “지방 인력을 흡수하는 대학 병원들의 수도권 분원 설치는 이런 정부의 ‘지역 의료 완결’ 대책과 정반대 방향”이라며 “정부가 수도권 분원 총 6600병상 중 73%를 쳐낸 것은 이런 배경에서 내놓은 수습책”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