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희 전 서울대 의대 학장. /조선일보 DB

“이번 의정 갈등을 수십 년간 쌓여온 해묵은 ‘규제 중심 의료 정책’을 찬찬히 곱씹어보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민간 의료 싱크탱크 ‘한국미래의료혁신연구회’의 강대희 회장(전 서울대 의대 학장)은 15일 본지 인터뷰에서 한국 의료 정책 근간에 깔려 있는 규제 문제를 지적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의료 발전을 가로막는 과도한 규제는 혁파하고, 의료계와 정부가 하루빨리 신뢰를 회복해 함께 나아가야 의사과학자 양성 등 미래 의료를 좌우할 핵심 과제에 대비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윤석열 정부 국정 과제에도 인공지능(AI)·빅데이터 의료 등 미래 의료 과제가 다수 포함돼 있지만, 정부의 규제 기조와 의정 갈등 사태로 속도를 못 내고 있다고 했다.

강 회장은 “우리나라 의료 정책은 일본에서 들여온 것이 많아 기본 기조가 ‘규제 중심’”이라고 지적했다. 그 대표적인 예로 ‘비대면 진료’를 들었다. 한국원격의료학회장도 맡고 있는 그는 “코로나 팬데믹 때 비대면 진료 3400만 건 중 심각한 부작용은 10건 정도밖에 안 됐는데 ‘진료 허용 범위’를 계속 논의하느라 시행도 못 하다가 2월 의료 파행 때 갑자기 허용한다고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의료 정책의 큰 그림을 그리고 국민 필요에 따라 추진하는 게 아니라 그때그때 돌려막는 땜질식 정책이 반복되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이를 막으려면 의료 정책을 만들 때 현장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도록 지금의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 등을 대한의사협회·대한의학회·KAMC(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가 함께 참여하는 ‘의료정책협의회’로 확대 개편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강 회장은 “의료 정책은 과학에 기반하고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고 했다. 규제는 더 풀고 의료계와 정부가 더 많이 소통해야 지역 의료 등 현재 과제는 물론 미래 과제도 풀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지역 의료를 살리기 위해선 지역 의료수가 차등화뿐만 아니라 수도권 대학병원과 지역 병원들 간 원격 협진도 활성화돼야 한다”고 했다. 또 “미래 의료 분야에선 질병 진료만큼 원격 환자 모니터링 장치 등을 발전시켜 질병을 예방하고 국민 의료비를 낮추는 것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의사과학자 양성도 그가 꼽는 핵심 과제다. 강 교수는 “중국만 해도 의료·과학 인재 육성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며 “우리가 의료 산업을 키우고 글로벌 의료 리더가 되려면 1년에 의사 과학자를 최소 100명 이상 양성하는 걸 목표로 정부가 공격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의사과학자들이 병원에서 진료를 보지 않고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