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정한 전공의 복귀 시한일인 15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 전공의 이탈 관련 호소문이 붙어 있다. 정부가 ‘데드라인’으로 제시한 사직 처리 시한이 임박했지만 수련병원으로 복귀하는 전공의(인턴, 레지던트)는 거의 없는 상황이다. /뉴스1

‘미복귀 전공의’ 1만여 명은 정부가 제시한 전공의 사직 처리 데드라인(7월 15일)까지도 사직·복귀 여부를 밝히지 않은 것으로 16일 확인됐다. 이에 따라 전공의 1만여 명 무더기 사직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정부는 일단 사직 처리한 후 이들이 9월 하반기 수련 때 복귀하도록 설득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대부분 복귀를 거부할 것으로 보여 지난 2월 전공의 집단 이탈로 시작된 의료 공백이 최소 내년 초까지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날 “15일까지 사직 여부를 답하지 않은 전공의가 대부분”이라면서도 “각 병원이 미복귀 전공의 사직 처리를 완료하고 결원 규모를 확정해 17일까지 하반기 전공의 모집 인원을 신청해야 한다는 기본 방침엔 변함이 없다”고 했다. 22일부터는 하반기 전공의 모집을 진행한다. 이에 서울대병원 등 ‘빅5(5대 대형 병원)’는 사직·복귀 여부를 밝히지 않은 전공의들을 일괄 사직 처리할 방침이다. 다만 수리 시점은 각 병원이 자체적으로 정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15일 정오 기준 수련병원 211곳에 출근한 전공의(인턴·레지던트)는 1155명이다. 전체 전공의 1만3756명 중 8.4%에 불과하다. 정부가 지난 8일 각 수련병원에 “15일까지 미복귀 전공의 사직 처리를 완료해달라”며 ‘최후통첩’을 했지만, 이날부터 15일까지 출근자는 60명 늘어나는 데 그쳤다. 사직 처리가 완료된 레지던트(86명)는 전체의 0.8%에 불과하다. 인턴도 전체 3250명 중 109명(3.4%)만 출근하고 있는 상태다.

그래픽=김하경

정부는 전공의 집단 사직서 제출이 시작된 2월 19일 ‘진료 유지 명령’을 발동하면서 강경 대응에 나섰다. 그러나 전공의 등 의사 집단이 거세게 저항하자 3월 하순부터는 유화책을 잇따라 꺼내 들었다. 지난달 4일엔 각 수련병원에 내렸던 전공의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 등을 철회했다. 복귀하는 경우엔 면허 정지 등 어떤 처벌도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래도 반응이 없자 지난 8일엔 복귀하지 않는 전공의도 처벌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또 사직 전공의가 9월부터 바로 다른 병원에서 일할 수 있게 하는 ‘수련 특례’도 제시했다. 암 환자 등 중환자의 불편이 커지는 상황에서 전공의 복귀율을 연내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런 유화책에도 전공의들의 ‘단일대오’를 깨진 못했다는 평가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전공의들은 여전히 내년도 의대 증원을 백지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이것이 관철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은 복귀·사직 의향을 물으려는 병원의 연락도 받지 않고 있다”고 했다.

대다수 수련 병원은 ‘무응답 전공의’를 사직처리 할 방침이다. 서울대병원은 16일 전공의들에게 ‘사직 합의서’를 보내면서 “응답하지 않으면 사직서를 수리할 예정”이라고 통보했다. 다만 일부 병원은 “전공의들이 거취 의사를 확실히 밝힐 때까진 사직 처리를 유보하겠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각 병원이 ‘미복귀 전공의’ 사직 처리를 완료하면 오는 22일부터 시작되는 하반기 전공의 모집에 응시하도록 최대한 설득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하반기 모집에 지원할 전공의 숫자는 미미할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정부가 제시한 전공의 사직 처리 마감일인 15일 서울 시내의 한 대형 병원 복도에 이탈한 전공의들의 복귀를 촉구하는 인쇄물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의료계 인사들은 “이탈 전공의 1만2000여 명 대부분이 복귀나 사직 의향을 밝히지 않고 버티는 ‘단일대오’가 깨지지 않았다”며 “이런 상황에서 당장 다음 주 시작되는 하반기 모집에 지원할 전공의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서울대병원 내과 전공의들은 내과 교수들에게 보낸 서신에서 “정부와 병원에서 강제로 사직 처리를 하더라도 정부의 전향적 입장 변화 없이는 병원으로 돌아가지 않기로 했다”고 했다.

이로써 지난 2월 전공의 이탈로 시작된 ‘전공의 없는 대형 병원’ 체제는 장기화 국면에 들어가게 됐다. 전공의 이탈 후 중환자를 치료하는 ‘빅5′를 중심으로 수술과 입원 건수가 반 토막 났다. 외래 진료도 30~40% 줄었다. 정부는 전공의들의 빈자리를 전문의로 채우겠다고 하고 있지만, 대형 병원 근무는 동네 병의원보다 소득은 낮고 일은 더 힘든 편이라 지금도 충원이 잘 되지 않고 있다. 환자들이 제때 대형 병원에서 수술을 못 받는 상황이 내년 초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정부는 전공의 복귀율이 낮을 경우, 전국 47개 상급종합병원(대형 병원)을 전문의 중심의 중환자 치료 기관으로 만들 방침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빠르면 9월부터라도 상급 종합병원에 대해 구조 전환 시범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라며 “상급 종합병원을 전문의 중심 병원으로, 중증이나 희소 질환 위주의 진료를 하는 곳으로 구조 전환한다는 게 큰 방향”이라고 했다.

이를 위해 PA(진료 지원) 간호사부터 확충할 계획이다. 현재 수술실 등에서 집도의를 돕는 숙련된 PA 간호사는 1만여 명이다. 정부 관계자는 “간호법을 개정해 PA 간호사가 전공의 업무 일부를 할 수 있도록 법제화할 것”이라며 “인원도 지금의 두 배 정도로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또 경증 환자는 중·소형 병원에 가도록 해 대형 병원 의료진의 부담을 줄일 계획이다. 이미 대형 병원이 비(非)중증 환자를 중형 병원으로 보내면 두 병원 모두에 ‘회송 수가(건보공단이 병원에 주는 돈)’를 주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대형 병원이 중환자만 봐도 병원 유지가 가능하도록 관련 수술·입원 수가도 올렸다”고 했다. 정부는 2월부터 최근까지 ‘전공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예비비와 건보재정을 합쳐 총 1조2000억원을 투입했다. 세브란스병원의 한 교수는 “지친 교수들은 시간이 갈수록 지금보다 수술·진료 건수를 줄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그동안 낮은 수가 구조에서 환자를 최대한 많이 보는 ‘박리다매’ 진료로 수익을 올렸던 빅5 등 대형 병원들의 경영 상황도 악화할 수밖에 없다. 지난 2월부터 빅5는 하루 10억~20억원씩 적자를 봤다. 지금까지 누적 적자액은 병원당 1000억원이 넘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한 빅5의 외과 교수는 “병원장이 내부 회의에서 ‘10월이 되면 아마 교수들 월급 지급이 어려울 것’이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한양대학교를 운영하는 학교법인 한양학원은 최근 한양증권을 매각하겠다고 발표했다. 한양학원 산하 건설사인 한양산업개발이 건설 경기 악화로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는 데다, 전공의 이탈로 직격탄을 맞은 한양대병원도 지원하기 위해 매각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