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오후 서울의 한 호텔에 의사와 간호사 300여 명이 모였다. 싱가포르 보건부 산하 공공의료 서비스 지주회사인 MOH홀딩스가 주최한 해외 의료인 채용 설명회를 듣기 위해서였다. 이날 싱가포르에서 일할 의향이 있는 의사와 간호사들에게 채용 계획을 알리면서 질의 응답도 진행했는데, 참가한 의사 200여 명 중 절반가량은 전공의였다고 한다. 의료 대란 이후 대학병원 취업이 어려워진 간호사들도 100여 명이 참가했다. 주최 측은 “참석자 모집에 2주가량 걸릴 것으로 생각했는데, 신청자가 몰려 3일 만에 마감했다”고 했다.
싱가포르는 전 세계 103개 의대 출신에 대해서만 자국에서 의사 면허를 인정한다. ‘검증된 이들만 받겠다’는 취지다. 한국에선 서울의대, 연세의대가 포함돼 있고 그 외 대학의 경우 싱가포르 보건 당국의 의사 면허 인증 절차를 별도로 밟아야 한다. 그런데도 채용 설명회에 200여 명의 의사가 몰려든 것은 이례적이다. 이날 행사를 주관한 케이닥의 조승국 대표는 “싱가포르 의사 면허와 전문의 취득 과정, 근무 시간, 근무 조건, 업무 강도에 관한 질문이 많았다”고 전했다. 현장에서 면접을 본 이들도 30명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월 의료 파행 사태 이후 싱가포르뿐 아니라 미국·일본으로 눈을 돌리는 전공의도 적지 않다. 실제 미국 의사 시험 준비 커뮤니티에는 미국행을 고민하는 전공의들의 글이 다수 올라왔다. 이런 가운데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최근 의사들을 대상으로 해외 진출 정책 관련 설문조사를 진행해 일각에서 논란이 일었다. 의협은 “의사 회원의 해외 진출에 대한 관심이 급증해 이에 관한 의협의 정책적 지원에 관해 논의하고자 한다”고 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의료 공백 책임은 정부에 전가하고, 국내 의료가 어떻게 되든 제 살길만 찾으면 된다는 것이냐”는 비판이 나왔다.
전공의들의 해외 진출은 쉽지 않다. 미국의 경우 시민권이나 영주권이 없는 사람이 현지에서 의료 행위를 하려면 별도의 비자를 받아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우리 정부의 추천서가 필요하다. 정부는 “(추천서 발급 여부는)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할 것”이라며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또 의사의 해외 진출은 진료와 수술 등 복잡한 업무상 언어 장벽이 만만치 않다. 다른 나라에서 몰려드는 지원자들과 경쟁해 일자리를 따내야 하는 것도 걸림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