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마감된 전국 수련병원 126곳의 하반기 전공의 모집 결과, 총 모집 인원 7645명 가운데 지원자는 100여 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른바 ‘빅5(서울대·서울아산·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성모)’ 병원의 경우, 2093명을 뽑겠다고 했지만 총 지원자가 30여 명에 그친 것으로 전해졌다.

전국 수련 병원들은 이날까지 올 9월부터 수련을 시작하는 하반기 전공의 지원서를 받았다. 인턴 2525명, 레지던트 5120명 등 7645명을 모집하겠다고 했지만, 지원자가 ‘0명’인 병원이 대다수였다. 빅5 병원도 대부분 지원자가 한 자릿수였다. 정부가 하반기 지원자에 한해 전문의 자격 취득이 늦어지지 않도록 특례를 주겠다고 했는데도 전공의들이 반응하지 않은 것이다.

앞서 전공의들은 지난 2월 집단 사직서를 내고 진료 현장을 떠났다. 하반기 전공의 충원이 사실상 이뤄지지 않은 만큼 최소 내년 2월까지 전국 주요 병원이 전공의 없이 운영되는 ‘뉴 노멀(new normal·새 표준)’에 들어서게 됐다. 이에 따라 전공의 비율이 40~50%에 달했던 대형 병원의 경영난이 가중되고, 진료·수술 지연 등 환자들의 피해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빅5 병원 한 교수는 “전공의들은 ‘2025학년도 의대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 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정부의 태도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복귀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라며 “이제 각 병원은 전공의 없이 어떻게든 버텨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고 했다.

그래픽=백형선

당장 큰 문제는 환자 진료와 병원 재정이다. 전공의 이탈 후 중환자를 치료하는 빅5 병원의 수술·입원 건수가 반 토막 났다. 외래진료도 30~40% 줄었다. 조강희 충남대병원장은 30일 임직원들에게 보낸 글에서 “충남대병원은 부분 자본 잠식, 분원인 세종충남대병원은 완전 자본 잠식 상태”라며 “올해 1~5월 각각 148억원 적자, 220억원 적자가 발생했다”고 했다.

전공의들도 사정이 여의치 않다. 피부과·성형외과 의원 등에서 페이닥터(병원에 고용된 의사)로 일하려는 이가 많지만, 한꺼번에 수천명의 전공의가 쏟아지게 되면서 급여 수준 등이 종전보다 크게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의료계 원로들은 “전공의 복귀를 위해 정부가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한중 전 연세대 총장은 “이대로 가면 내년이 아니라 그 이후에도 의료 공백 사태가 계속 이어지고, 의료 인력 양성 체계와 의료 시스템이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지게 된다”고 했다. 김 전 총장은 “정부가 2025학년도 의대 정원은 손댈 수 없고 2026학년도 정원은 논의할 수 있다고 하지만, 의료계는 그 말을 신뢰하지 않는다”며 “2026학년도 정원 조정에 의료계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도록 협의 기구를 제대로 구성하는 등 조치를 정부가 먼저 취해줘야 한다”고 했다.

김영훈 전 고려대의료원장은 “암, 심혈관, 뇌질환 등 중증 환자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그러려면 우선 중증 환자를 일정 비율 이상 유지하는 병원에는 PA(진료 지원) 간호사, 입원 전문 전담의 등 전공의 대체 인력 인건비를 국가가 보조하면서 중증 환자 진료 시범사업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정부가 의료 개혁 방향을 발표할 때 구체적인 재원 마련 계획까지 제시해야 의료계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란 지적도 나왔다. 송시헌 전 충남대병원장은 “정부가 ‘전문의 중심 병원’을 만들겠다고 하는데,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식이 아니라 그 계획을 뒷받침할 예산을 어떻게 마련할지까지 함께 제시해야 한다”고 했다. 한상욱 아주대의료원장도 “필수 의료 수가 현실화가 중요하지만, 정작 정부는 지원 한계가 분명한 건강보험 외 별도 재원에 관한 언급은 안 보인다”며 “필수 의료 의사들의 소송 부담을 덜어주는 것도 중요한 과제”라고 했다. 박종훈 전 고려대안암병원장은 “지금 의대 1학년생들이 여전히 1학년으로 남아 있는 상황에서 의대생 휴학 문제의 해결 실마리부터 빨리 찾아야 하고, 병원이 PA 간호사에게 어느 업무까지 맡길 수 있는지 범위도 명확하게 정해줘야 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