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161cm, 몸무게 43kg의 40대 청년이 서울 강남구 자택 거실에 누워있었다.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미동도 없었다. 간간이 ‘쉭쉭’ 소리만 들렸다. 목에 구멍을 내고 꽂은 인공 호흡기가 그가 숨 쉬도록 도와주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컴퓨터 화면에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라는 글자가 한 자씩 나타났다. 눈을 움직이거나 깜빡여 사용하는 ‘안구 마우스’로 말을 건 것이다.

척수성근위축증 환자 신형진(41)씨는 오는 24일 7년 동안 모은 3000만원을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 호흡재활센터에 기부한다. 신씨가 6년 만에 퇴원한 2006년 8월 24일을 기념해 기부를 결정했다. 지난 7일 만난 신씨는 “그동안 급여를 틈틈이 저축해 모았다”며 “이 돈을 어디에 쓰면 가장 의미 있고, 하나님이 기뻐하실지 고민해 보니 호흡 재활 치료에 작게나마 보탬이 되는 게 가장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척수성근위축증 환자들은 온몸의 근육이 태어날 때부터 평생에 걸쳐 천천히 마비된다. 그러다 호흡기 근육까지 마비되면 인공 호흡기에 의존하면서 병원에서 남은 생을 보내야 한다. 그러나 신씨처럼 호흡 재활을 받은 환자들은 필요할 때만 인공 호흡기를 사용하면서 병원 바깥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다.

신씨는 돌이 됐을 무렵 “1년 이상 살기 힘들다”는 판정을 받았지만, 부모와 의료진의 노력으로 연세대 컴퓨터과학과 학부를 졸업하고 석·박사 통합 과정까지 수료했다. 이어 대학원 후배와 ‘애니메이션계 넷플릭스’라고 불리는 국내 1위 애니메이션 OTT(동영상 스트리밍) 회사 ‘라프텔’을 공동 창업했다.

척수성근위축증 환자 신형진(41)씨는 안구 마우스를 이용해 기자에게 인사를 건네자마자, 서둘러 코딩 프로그램을 열고 쉴 새 없이 눈을 깜빡였다. 신씨는 애니메이션 OTT ‘라프텔’에서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로 일하고 있다. 라프텔 이용자들이 성별, 연령 등 특성에 따라 어떤 애니메이션을 많이 봤는지 등을 분석해 다른 직원들이 쓸 만한 유용한 정보를 얻어내는 역할이다. 이용자별로 애니메이션을 추천해주는 알고리즘 개발에 있어서도 필수적인 업무다. 신씨는 오전 9시부터 밤 12시까지 밤낮없이 일한다. 회의가 있는 날에는 카메라를 켜고 화상 회의에 참가하기도 한다.

손발이 되어준 어머니와 함께 - 신형진(왼쪽)씨는 돌 무렵 척수성근위축증 진단을 받아 41년 동안 침상에서 일어나지 못했지만, IT 기업을 창업해 번 3000만원을 강남세브란스병원에 기부했다. 그의 곁에 모친 이원옥(오른쪽)씨가 항상 함께하고 있다. 2010년 5월 서울 신촌동 연세대 교정에서 이듬해 2월 졸업을 앞두고 졸업 사진을 찍은 신씨와 이씨가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이원옥씨 제공

신씨의 라프텔 창업은 한 대학원 후배의 ‘폭탄 선언’에서 시작됐다. 지난 2014년 어느 날 신씨의 필기 도우미였던 후배가 “대학원을 그만두겠다”고 한 것이다. 이어 “만화 분야로 창업할 건데 형도 같이 하자”고 제안했다. 그가 바로 라프텔 창업주 김범준씨다. 당시 신씨는 ‘공부만 하는 것도 벅찬데 내가 밑바닥부터 회사 생활을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앞섰다고 한다. 하지만 IT와 만화 모두 신씨가 좋아하는 분야였기에 공동 창업자로 합류해 지금까지 왔다.

지난 7일 서울 강남구 신형진(41)씨 자택 거실에서 신씨가 모니터 아래 달린 안구 마우스를 이용해 코딩을 하고 있다. 서울 낮 최고기온이 33도를 웃돈 이날 신씨 자택에서는 에어컨 대신 선풍기를 켰다. 신씨에게는 폐렴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감기가 가장 위험하기 때문이다. /김지호 기자

다른 공동 창업자 중에는 신씨의 대학 동문 후배인 박종원 라프텔 대표가 있다. 박 대표는 하반신 마비 장애인이다. 둘은 연세대 내 장애인 학생을 위한 휴게 공간에서 자주 만났다.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는 공통점도 있었다. 라프텔에는 신씨가 가장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명탐정 코난’을 포함해 신씨와 박 대표 같은 애니메이션 ‘덕후’들이 엄선한 애니메이션을 3000편 넘게 볼 수 있다. 지난해 국내 OTT 중 유일하게 흑자(24억원)를 보기도 했다. 라프텔이라는 회사 이름도 유명 애니메이션 ‘원피스’에 나오는 섬 이름에서 따왔다.

모친 이원옥(77)씨의 희생과 노력이 지금의 신씨를 만들었다. 신씨의 초·중·고 시절, 이씨는 아들과 함께 매일 등교했다. 쉬는 시간이 되면 신씨 휠체어를 끌고 보건실로 가 산소 호흡기를 대줬다. 시험을 볼 때는 어머니와 아들이 복도로 나왔다. 손을 쓸 수 없는 아들이 답을 부르면 어머니가 받아 적었다. 신씨가 대학에 다닐 때는 공대생 아들의 학업을 돕기 위해 밤마다 어려운 수학 기호를 달달 외웠다. 매일 아들과 휠체어를 차에 싣고 내리기를 반복하다 보니 10년 전쯤에는 척추관 협착증을 진단받았다. 척추 신경이 지나는 통로인 척추관이 좁아지는 병이다. 목과 허리가 뻐근해 이씨는 절뚝거리면서 걷지만, 그는 이 병은 신씨를 잘 길러낸 훈장이라고 했다.

주변 사람들의 배려도 많았다. 초등학교 때는 같은 반 친구들에게 학용품 선물을 많이 받았다. 대학교에 다닐 때는 신씨 도우미를 자처하는 학생이 많아 한 달씩 돌아가며 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가 연세대 소프트웨어응용연구소에서 근무했을 때는 학교 측 배려로 매일 출근하지 않고 일주일에 한두 번만 연구소에 나와 회의에 참석할 수 있었다. 연구 과제는 주로 재택근무로 했다.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신씨를 위해 연구소 건물 1층에 연구 공간을 따로 마련해주기도 했다.

보답의 의미로 신씨 부모는 지금까지 연세대학교와 강남세브란스병원에 각각 10억원씩을 기부했다. 그러나 신씨가 직접 번 돈을 기부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강남세브란스병원 호흡재활센터에서 치료를 받은 환자가 직접 번 돈을 기부하는 것도 처음이라고 한다. 신씨의 주치의였던 강성웅 호흡재활센터 소장은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기쁘다”며 “이번 기부금은 형진이 뜻대로 중증 호흡 환자들 치료에 쓰일 것”이라고 밝혔다.

신씨는 “부모님께 효도하고 제가 받은 사랑을 주변에도 흘려 보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며 “삶이 비록 어려움의 연속이지만 다른 환우분들도 포기하지 않으셨으면 한다. 그러면 분명 좋은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