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정형외과 진료 기다리는 환자들 - 14일 서울 연건동 서울대어린이병원 소아정형외과 앞에서 소아 환자와 보호자들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전국 대학 병원에서 고난도 수술을 전담하는 소아 외과계 의사가 갈수록 줄면서 소아 희소·응급 환자 치료에 비상이 걸렸다. /김지호 기자

A(11)군은 지난 2019년 동네 정형외과에서 다리 성장판 부위의 뼈를 맞추는 수술을 받았다가 통증이 계속돼 대학 병원에 갔다. 일반 성인과 같은 방식으로 수술을 했다가 혈액 순환이 제대로 안 돼 허벅지 뼈 일부가 썩은 것이다. A군은 서울대 어린이병원 소아정형외과에서 뼈를 자르고 다시 정렬한 뒤 붙이는 수술을 받았다. 신창호 서울대 어린이병원 소아정형외과 교수는 “소아 환자는 신체 특성이 성인과 전혀 달라 수술에서도 전문 의료진이 필요한 경우가 많지만, 낮은 수가(건보공단이 병원에 주는 돈)와 저출산, 소송 위험 등 때문에 소아정형외과 전문의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고 했다.

소아 외과계도 소아청소년과처럼 희소 질환을 치료하고 고난도 수술을 한다. 하지만 ‘필수 의료’의 한 분야로 관심을 받는 소아과와 달리 소아 외과계는 무관심 속에 고사하고 있다. 현재 전국 대학 병원의 소아 전담 정형외과 의사는 총 10명에 불과하다. 10년 전만 해도 새로 배출되는 소아정형외과 전문의가 매년 12명 정도였지만, 현재는 4명으로 3분의 1 토막이 났다. 기존 전문의는 은퇴하고, 극소수의 신규 전문의마저 상당수가 개원가로 빠져나간 탓이다.

그래픽=김현국

소아이비인후과도 마찬가지다. 고난도로 꼽히는 호흡 곤란 소아 수술을 할 수 있는 교수는 전국 대학 병원에 3명뿐이다. 호남권에는 아예 없다. 소아 성기 기형 등을 수술할 수 있는 소아비뇨의학과 교수는 전국에 10명뿐이다. 이 과는 교수를 지망하는 고참 전문의인 전임의조차 없이 운영된 지 3년이 넘었다. 소아 수술 시 혈압·체온 등을 최적의 상태로 유지할 수 있는 소아 전담 마취과 전문의도 국내 24명이다.

그래픽=김현국

무릎이 아파 동네 정형외과를 찾은 B(6)양은 작년 양쪽 무릎 뼈에서 종양이 발견돼 제거 수술을 받았다. 그런데 B양은 커가면서 양 다리가 안쪽으로 점점 휘었다. 동네 정형외과에서 종양을 제거할 때 성장판도 함께 제거한 게 원인이었다. B양은 대학 병원 소아정형외과를 찾아 교정 수술을 받아야 했다.

소아는 뼈와 관절의 특성이 성인과 다르다. 성인에 비해 혈관이 가늘어 채혈조차 쉽지 않다. 어떤 약을 얼마 만큼 써야 하는지도 성인과 기준이 완전히 다른 경우가 많다. 그만큼 사고 위험성도 성인에 비해 크고, 소송 시 병원이 물어야 할 배상액도 크다.

반면 수가는 성인 환자를 진료할 때와 같거나 오히려 더 낮다. 서울의 한 대형 병원 교수는 “수가가 낮아 수술을 할수록 병원 재정에 손해가 난다”며 “병원에서는 소아 외과계가 ‘필수과’가 아닌 ‘손해과’로 인식되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서울대 어린이병원 소아정형외과에서 교수를 비롯해 전공의·간호사 등 총 7명이 4세 여아의 양쪽 다리를 9시간 45분 동안 수술했는데, 최종 수술비는 99만원이었다고 한다. 시간당 단가(10만원)가 쌍꺼풀 수술이나 피부 레이저 시술의 5분의 1도 안 되는 셈이다.

다른 과도 비슷하다. 대한소아비뇨의학회에 따르면, 성인을 대상으로 한 방광 절제술은 수가가 350만원인 반면, 소아 환자를 대상으로 한 요관 방광 문합술은 126만원으로 3분의 1 수준이다.

최근 경기 성남의 한 대형 병원에 유일하게 남아있던 소아정형외과 전문의도 병원을 떠났다. 이 병원에서 뼈·관절 등이 심각하게 손상된 어린이 환자 치료 기능은 중단됐다. 이런 상황 때문에 소아정형외과 전문의가 있는 서울 대형 병원에서 수술받으려면 1년 이상 기다리기도 한다.

소아마취과 의사도 부족하다. 신생아나 영아 마취는 성인보다 어렵고 위험은 커 기피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임병건 대한소아마취학회장은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소아 마취 전문의가 사라지고 말 것”이라고 했다.

소아이비인후과에서 기도를 확보하는 고난도 수술인 복잡 후두 협착증 수술은 전문 의료진 2~3명이 6~8시간 이상 진행하는데 수가가 103만원에 그친다. 소아 귓구멍을 뚫어주는 외이도 폐쇄증 수술도 3~5시간 이상 수술에 수가가 93만원이다. 한 대형 병원은 수익이 높은 간담췌 분야 조교수 1명이 올리는 매출이 소아 이비인후과 전문 인력 7명의 매출보다 높을 정도라고 한다. 이상혁 대한소아이비인후과학회 학술이사는 “수술을 하면 할수록 병원에는 손해가 되는 셈이어서 사명감만으로 이 분야를 전공하겠다는 의사도 갈수록 줄고 있다”고 했다.

소아 전문 수술 수가는 외국에 비해서도 낮은 편이다. 소아 심장의 동맥관 개존 폐쇄술 비용은 한국이 131만원, 일본은 3876만원으로 29배 이상 차이가 난다. 소아 외과계 의사들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소아 수술 수가를 일방적으로 삭감해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고도 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많이 받는 수술은 환자 상태에 따라 수가가 세분화되어 있다. 같은 수술이라도 고난도면 그만큼 수가가 높게 책정된다. 그런데 수술 건수가 적은 소아 희소 질환은 환자 상태에 따라 수가가 세분화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복잡한 고난도 수술인데도 이런 부분이 다 인정받지 못하고 낮은 수가만 받게 되는 것이다. 일례로 소아비뇨의학과의 함몰 음경 수술(피부 안에 묻힌 음경의 복원)은 몇 년 전 당국에서 부적합 판정을 받아 수술을 진행한 대형 병원마다 수가가 최대 수억 원씩 삭감되면서 수술이 위축됐다고 한다. 한 대학 병원 교수는 “이런 문제 때문에 병원 수익이 줄고 소아 외과계 의사가 이탈하면 국가적 손해가 된다”고 했다.

소아 외과계는 소아 외과·정형외과·성형외과·신경외과·흉부외과·안과·이비인후과·비뇨의학과·마취과 등 총 9과목으로 분류된다. 전국 대학 병원의 소아 외과계 9과목 교수를 합치면 172명으로, 우리나라 전체 소아청소년과 의사(6000여 명)의 2~3%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