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 대학병원에서 응급환자가 응급실로 향하는 모습./뉴스1

정부가 응급실 일반의 채용 시 인건비를 지원하고, 난동 환자에 대해선 진료를 거부할 수 있도록 하는 응급실 대책을 검토 중인 것으로 26일 알려졌다. ‘경증 환자’ 정의를 명확히 해 가벼운 증상의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빨리 보내고, ‘응급실 뺑뺑이’ 환자를 최종 수용한 병원의 의료진에게는 불가피한 환자 피해 책임을 면제해주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정부는 응급실 의사에게 돈·권한·면책을 주는 ‘3중 지원’을 포함한 응급실 대책을 검토 중이다. 이르면 이번 주 발표한다. 지난 22일 응급실 대책을 발표 후 응급실 연쇄 파행 움직임이 계속되고 ‘추석 연휴 위기설’까지 불거지자 추가 대책을 내놓는 것이다.

정부의 이번 대책은 응급실의 고질적 문제들을 완화하는 데 초점이 모아져 있다. 현재 응급실의 가장 큰 문제는 의사 부족이다. 정부가 각 병원의 응급의학과 사직 전공의 채용 시 인건비 지원을 검토하는 것은 이 인력난을 완화하기 위한 목적이다.

또 다른 고질적 문제는 대형 병원에 경증 환자가 몰리는 것이다. 정부가 응급의료법 시행령 등에 다른 병원으로 신속히 보낼 수 있는 ‘경증 환자’를 명시하려는 것은 이런 쏠림을 줄이려는 의도다.

응급실 의사가 폭력·협박 환자의 진료를 거부할 수 있게 시행령 등을 개정하려는 것은 그간 응급실 마비의 주범으로 꼽혔던 난동 환자 문제 개선을 위해서다. 또 해묵은 문제인 ‘응급실 뺑뺑이’ 사례를 줄이기 위해 뺑뺑이 환자를 최종 수용한 병원에서 불가항력적 사고가 발생했을 때 의사의 책임을 사실상 묻지 않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그래픽=양진경

경기도 남부 지역의 중환자 최종 치료를 책임지는 아주대병원 응급실은 최근 성인 응급실 의사 절반이 피로 누적 등으로 사표를 내면서 셧다운(운영 중단) 위기에 몰려 있다. 아주대병원 측은 최근 보건복지부에 “근무 시간대별로 의사 1명이 근무 중인데, 최소 2명은 돼야 한다”며 “사직 응급의학과 전공의 등을 일반의로 채용할 수 있도록 인건비 지원을 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이를 수용해, 아주대병원뿐만 아니라 대학병원급 응급실에서 일반의를 채용할 경우 인건비 상당 부분을 지원할 예정이다. 일반의 채용으로 인력난에 허덕이는 응급실에 숨통을 틔워주려는 것이다. 경기도의 한 상급종합병원장은 “아주대병원의 일반의 인건비 지원 요청은 응급실 전문의는 없고, 전공의 이탈로 인한 경영난으로 의사 뽑을 돈도 없는 대형 병원의 현실을 잘 보여준다”고 했다.

정부의 이번 대책은 환자는 늘고 의사는 줄어드는 추석 연휴를 전후해 응급실 연쇄 셧다운이 발생할 수 있다는 ‘9월 위기설’을 의식한 면이 크다. 서울의 한 응급의학과 교수는 “명절 연휴엔 이동이 많아 환자가 평소보다 150~200% 증가하는 반면 수술을 할 수 있는 각 배후 진료과 의사는 소수만 근무한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형 병원 경증 환자 점령 문제는 시급히 대응해야 할 문제다. 현재 전국 응급실 내원 환자의 44%는 경증 등 비(非)응급 환자다. 중환자 치료를 위해 경증 환자는 2차(중형) 병원으로 빨리 보내야 한다. 정부 관계자는 “소아 발열 등 응급 환자 분류상 중형 병원으로 보낼 수 있는 ‘경증 환자’지만, 법률상 진료 거부를 할 수 없는 ‘응급 환자’로 볼 수 있는 경우가 있다”며 “대형 병원이 내려보낼 수 있는 경증 환자 정의를 분명히 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 25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아주대병원 응급실로 의료진이 들어가고 있다. 이 응급실은 성인 환자를 보는 전문의 14명 중 3명의 사직서가 수리됐고 4명이 추가로 사표를 냈다. 정부는 일반의 인건비 지원 등 응급실들에 대한 추가 지원 대책을 곧 발표할 예정이다. /뉴스1

응급실 난동 환자 처리도 ‘긴급 대응 과제’다. 전공의 이탈 전 근무 시간대별로 4명이 근무했던 응급실엔 지금은 전문의 1명만 남아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환자가 의사를 폭행·협박할 경우 응급실 가동은 중단된다. 응급의료법 제6조는 응급실 의료진은 정당한 사유 없이 응급 환자 진료를 거부할 수 없게 돼 있다.

그런데 ‘정당한 사유’가 무엇인지는 나와 있지 않다. 이 때문에 응급실 의사는 폭행을 당해도 자기를 때린 환자를 진료해야만 한다. 그러지 않으면 ‘진료 거부’로 징역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2020년 난동 환자의 진료를 거부할 수 있다는 유권해석을 내놨지만 현장에서 효과가 없다는 지적이 많다”며 “시행령 등에 정당한 진료 거부 사유로 ‘환자의 폭행·협박·폭언’ 등을 명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추석 연휴엔 ‘응급실 뺑뺑이’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도 높다. 정부는 촌각을 다투는 ‘뺑뺑이 환자’의 경우 119 상황실 등을 통해 특정 병원에 ‘강제 배정’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다만, 강제 배정을 받은 병원의 의사가 수술 중일 수도 있기 때문에 진료 지연 등 불가피한 사유로 사고가 나도 병원 책임을 사실상 묻지 않는 방향으로 응급의료법 개정을 논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