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법이 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29일 파업을 예고했던 간호사 상당수가 의료 현장을 떠나지 않기로 했다. 특히 고려대의료원·중앙대의료원 등 주요 병원 간호사들이 파업 대열에서 이탈해 동력이 크게 약화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전공의에 이어 간호사마저 의료 현장을 떠나는 최악의 상황을 우려했던 정부도 일단 안도하는 분위기다.
여야는 이날 간호법 제정안을 재석 290명 중 찬성 283명, 반대 2명, 기권 5명으로 통과시켰다. 의사 업무 일부를 하면서도 법적 보호를 받지 못했던 1만6000명 ‘진료 지원(PA) 간호사’ 업무의 제도적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대한간호협회는 법안 통과 직후 성명을 내고 “2005년 국회 입법으로 시도된 후 무려 19년 만에 이뤄진 매우 뜻깊고 역사적인 사건”이라며 “정부가 현재 추진 중인 의료 개혁에 적극 동참하겠다”고 했다.
이날 오후 10시 기준 파업을 예고했던 병원 62곳 중 24곳이 파업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이들 병원은 2~3%대 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려대의료원 소속 3개 병원, 이화여대의료원 소속 2개 병원, 중앙대의료원 소속 2개 병원 등 주요 병원에서 임단협이 타결되면서 파업 동력이 크게 떨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보건의료노조도 이날 성명에서 “간호법 통과와 노동위원회의 적극적 중재 노력 등이 긍정적 영향을 미치면서 원만한 타결 흐름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의사들은 “기장이 부족하다고 승무원에게 비행기 조종을 맡기는 격”이라며 “무면허 의료행위가 만연하게 될 것”이라고 반발했다. 대한의사협회는 “간호법은 직역 갈등을 심화시키고 전공의 수련 생태계를 파괴하는 의료 악법”이라며 “간호사가 의사 자리를 대신하는 곳에서 의업을 이어가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의사들은 이쯤에서 물러나겠다”고 했다.
여야는 이날 국회 본회의에서 간호법 제정안을 비롯한 28건을 처리했다. 22대 국회 개원 이후 거야(巨野)의 쟁점 법안 강행 처리와 대통령 거부권 등으로 극한 대립을 이어온 여야가 처음으로 민생·비쟁점 법안을 합의 처리한 것이다.
이날 재석 의원 295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된 전세사기특별법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이 전세 사기 피해 주택을 경매로 낙찰받아 피해자에게 공공 임대로 지원하거나, 경매 차익을 피해자에게 지급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세 사기 피해자 인정 요건인 보증금 한도는 3억원에서 최대 7억원으로 높였다.
이른바 ‘구하라법’이라 불리는 민법 개정안은 자녀 부양 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하거나 범죄를 저지른 부모의 상속권을 상실시키는 내용이다. 2019년 사망한 가수 구하라씨 오빠가 “어린 동생을 버리고 가출한 친모가 상속재산의 절반을 받아 가려 한다”며 입법을 청원하면서 구하라법으로 불렸고, 2026년 1월부터 시행된다.
은행의 서민 정책 금융 출연금을 2배(0.06%)로 확대하는 내용의 서민금융지원법 개정안도 이날 국회를 통과했다. 구조금을 신청한 범죄 피해자가 이를 지급받기 전에 사망하더라도 유족이 구조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범죄피해자보호법 개정안도 본회의에서 가결됐다.
여야는 그 밖에도 예금자보호법, 에너지이용합리화법, 부동산등기법, 상업등기법, 광업법,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법 등도 합의 처리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를 요구해 국회로 돌아온 ‘전 국민 25만원 지원금법(민생회복지원금 특별조치법)’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 ‘방송 4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방송통신위원회법 개정안)’ 등 6건은 다음 달 26일 본회의에서 재표결에 부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