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양진경

서울에 있는 중견 기업 임원 이모(40)씨는 지난달 일본 가고시마의 한 산부인과에서 시험관 아기(체외수정) 시술을 받았다. 배아 착상에 성공해 현재 임신 11주에 접어든 그는 결혼하지 않은 ‘비혼 여성’이다. 그는 “항상 나를 닮은 아이를 갖고 싶었는데 대학원 학업과 직장 생활에 매진하다 보니 결혼이 늦어졌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한국에서 난자 냉동을 했다. 이후 정자은행 문을 두드렸지만 “미혼 여성에겐 정자를 제공할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수소문 끝에 덴마크 정자은행 웹사이트에서 정자를 구입해 일본으로 배송시킨 뒤, 일본에서 외국인이 시험관 시술을 받을 수 있는 산부인과를 찾아냈다.

한 해 동안 일곱 차례 일본을 오가며 다시 난자를 채취하고 검진과 시술을 받은 끝에 임신에 성공했다. 이씨는 “1년 동안 7000만원 이상 썼다. 한국에서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아이를 갖기가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라고 했다.

한국의 작년 출산율은 0.72명으로 역대 최저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 중 가장 낮다. 정부는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출산율을 높이겠다”고 했지만, 비혼(非婚) 출산 정책은 발표한 적이 없다. 작년 출생아 23만명 중 비혼 출생아는 4.7%(1만900명)를 차지했다. OECD 평균 비혼 출생아 비율(41%)의 8분의 1 정도다. 비율이 적고 부정적 인식도 있어 비혼 출산은 정책 지원 대상에서 배제된 상태다.

비혼 여성이 정자를 기증받아 임신·출산을 하는 것이 불법은 아니다. 현행법에 관련 규정 자체가 없다. 따라서 정부 지원을 받기도 어렵다. 정부는 난임 부부의 시험관 시술에 대해선 한 해 20회까지 건강보험 혜택을 준다. 사실혼 부부도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반면 비혼 여성은 모든 난임 시술에서 건보 혜택을 받을 수 없다. 모자보건법 등이 난임 지원 대상을 ‘부부’로 한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비혼 여성은 난임 시술은 물론 정자 기증을 받기도 어렵다. 산부인과학회에서 윤리강령으로 비혼 여성의 난임 시술을 금지하고 있고, 사설 정자은행도 난임 부부만 이용이 가능하다.

비혼 여성은 임신 후에는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임신 중 산부인과 진료를 받거나 출산할 때 건보 혜택을 받을 수 있고, 출산 후 출산·육아 수당도 받을 수 있다. 이는 비혼 여성을 위한 별도 장치가 있어서가 아니라, 건보 혜택과 육아 수당 제공 기준이 ‘우리나라 국민이 아기를 출산했을 경우’로 포괄적으로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