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2일 오후 세종시 도담동 세종충남대병원 응급실에서 의료진이 병상의 환자를 돌보고 있다. 세종시의 유일한 지역응급의료센터인 이곳에는 기저 질환이 있는 고령 환자를 비롯해 중증, 응급 환자가 계속 들어왔다. /신현종 기자

‘응급실 위기인가, 아닌가.’ 정부와 의료계는 최근 불거진 응급실 의료 공백 이슈에 대해 큰 시각차를 보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국정브리핑에서 “비상 진료 체계는 원활히 가동되고 있다”고 했고, 정부는 “일부 진료 제한은 발생할 수 있지만, 응급실이 완전히 문을 닫는 ‘셧다운(shutdown)’ 상황은 없을 것”이란 입장이다. 반면 의료계는 “정부가 응급 의료 위기 상황을 부정한 채 응급실 문만 열려 있으면 문제없다는 식으로 국민을 속이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본지는 전국 응급 의료 현장을 찾아, 지금도 환자 곁을 지키고 있는 의료진의 목소리를 듣고 정부가 내놓은 응급실 정상화 대책 등을 검증한다.

1일 오후 3시쯤 서울 양천구 이대목동병원 응급실 앞. 119 구급차 안에서 배달 라이더로 보이는 20대 남성의 발에서 피가 멈추지 않자, 구급 대원들이 응급 처치를 하고 있었다. 비슷한 시각 70대 여성 A씨도 응급실로 실려왔다. 119 구급대원은 “환자는 사흘 전부터 복통이 있었다는데 황달 증상이 나타나 급히 여의도의 한 응급실로 갔지만 수용이 안 된다고 해서 우리가 이곳으로 이송한 것”이라고 했다.

이대목동병원은 서울 서남권에서 중증 응급 환자를 책임지는 권역응급의료센터다. 응급실 중에서도 인력·시설·장비가 가장 잘 갖춰진 최고 등급 응급실이다. 하루 60여 명의 응급 환자를 진료한다. 구급대원들은 “이 일대에서 ‘환자를 이송하면 받아주는’ 거의 유일한 병원”이라고 말한다. 인근의 다른 대형 병원은 의정 갈등 이후 응급실 운영에 어려움을 겪다가 진료를 축소했다. 이대목동병원 응급실도 최근 인력 이탈로 야간 셧다운(운영 중단) 위기까지 갔지만, 기존 의료진이 조금씩 더 업무를 부담하면서 최대한 운영해보기로 했다고 한다. 이 병원 응급의학과 남궁인 교수는 이날 “일단 응급실 셧다운은 안 하기로 (병원) 내부에서 결정했다”며 “현재 응급실에 근무 중인 의사 8명이 최대한 환자를 받을 것”이라고 했다. 경기 서남권을 담당하는 수원 아주대병원도 응급의학과 전문의 14명 중 3명이 사직해 이달부터 ‘주 1회 셧다운’을 검토했지만, “남은 의료진이 노력해서 최악의 상황(셧다운)은 막아보기로 결정했다”고 1일 밝혔다.

의정 사태 장기화로 환자들의 불편이 커지고 있지만, 응급실을 지탱하는 건 남아있는 의사들이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경증 환자까지 몰릴 것이란 위기감이 커진 가운데 의료진의 분투로 환자 진료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지방 대학병원은 응급실 전문의들이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빠져나가는 사례까지 늘면서 사정이 더 여의치 않다.

그래픽=송윤혜

지난달 22일 오후 3시 세종시 내 유일한 지역응급의료센터인 세종충남대병원 응급실. 퀭한 얼굴의 민진홍 응급의학과장이 30대 남성 환자의 가슴 부위를 초음파 장비로 검사하고 있었다. 폐에 출혈이 생겨 20km 떨어진 충남 공주에서 이송돼 온 환자였다. 응급실 한쪽엔 잠 못 자는 의료진을 위한 커피 잔들이 놓여 있었다. 한 의료진은 “점심은 보통 햄버거나 김밥을 배달로 주문해서 먹고, 그럴 여유도 없을 땐 회의실에서 컵라면이나 즉석밥으로 해결한다”고 했다.

이곳은 최상급 응급실인 권역응급의료센터 진료 축소의 직격탄을 맞았다. 충북 지역 유일한 권역응급의료센터인 충북대병원 응급실은 응급의학과 전문의 병가·휴직으로 지난달 14일 하루 문을 닫았다. 충남 지역 권역응급의료센터인 순천향대천안병원과 단국대병원도 응급의학과 전문의 이탈로 최근 운영을 일시 중단했었다. 그러자 이곳으로 환자가 몰렸다. 반면 의사들은 처우가 더 나은 곳으로 떠났다. 세종충남대병원 응급실은 최근 응급의학과 전문의 4명이 잇따라 사직해 8월 한 달간 매주 목요일엔 성인 응급 환자를 못 받았다. 1일자로 전문의 4명이 추가로 사직해, 추석 연휴 기간을 제외하면 9월 한 달간 야간 진료를 아예 하지 않는다. 민 과장은 “응급실 전문의 채용 공고를 계속 내고 있지만, 별 반응이 없다”며 “지금 수도권에서 스펀지처럼 전국의 의사들을 빨아들이고 있다”고 했다. 의사는 수도권 대형 병원 등에 뺏기고, 환자는 먼 곳에서도 몰려오는 ‘이중고’에 빠진 것이다.

세종충남대병원과 같은 지역응급의료센터인 건국대충주병원 응급실도 사정은 비슷하다. 이 병원 응급실은 8월을 끝으로 전문의 7명이 일괄 사직하기로 하면서 문을 닫을 위기에 놓였지만, 7명 중 2명이 잔류하기로 하면서 가까스로 셧다운을 면했다. 이달부터 야간·주말엔 문을 닫고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만 진료를 한다. 지방 대학병원의 한 응급실 전문의는 “정부는 무엇보다 지역 대학병원 응급실, 그중에서도 심야 새벽 시간대에 일할 수 있는 의료 인력부터 확보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