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학년도 대학입학시험전형 수시모집 원서접수를 하루 앞둔 8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학원 건물에 의대 입시 홍보문이 붙어있다./연합뉴스

전국 4년제 대학 195곳이 9일부터 13일까지 2025학년도 대입 수시 모집 원서를 접수한다. 대학 입시는 ‘수시’와 ‘정시’로 나눠 모집하는데, 수시 모집에서 전체 대학 모집 인원의 약 80%를 선발한다. 의대 역시 내년도 정원 4610명 중 67.6%(3118명)를 수시에서 뽑는다.

정부는 의료계가 요구하는 ‘내년도 의대 증원 백지화’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의대 정원을 2024학년도 3113명에서 2025학년도 4610명으로 1497명 늘리겠다고 지난 5월 말 발표했다. 수십만명의 수험생은 이에 대비해 지원할 학과를 결정했고 9일부터 원서를 쓰는 것이다. 수험생들은 수시에서 총 6장의 원서를 쓸 수 있는데, 최상위권 학생들은 올해 크게 늘어난 의대 정원을 고려해 6장을 어느 대학, 어느 학과에 지원할지 전략을 짰다. 최상위권 학생들이 의대로 몰리면, 서울대·연세대·고려대 등 상위권 대학의 다른 학과 지원자들에게도 도미노처럼 영향을 준다.

그래픽=김성규

이미 원서 접수가 시작된 상황에서 ‘의대 증원’을 없던 일로 하면 수험생 혼란이 너무 크다는 게 교육계의 지배적 의견이다. 정부가 의대 증원을 백지화하면 의대를 지망하는 학생들은 이에 대해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며 행정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높다. 법원장 출신 변호사는 “지금 와서 의대 모집 인원을 변경하면 수험생들이 큰 타격을 입기 때문에 법원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더 높다”고 했다. 가처분이 인용되면 수험생들은 증원된 의대 입시안에 맞춰 준비를 하겠지만, 만약 추후 본안(本案) 소송에서 학생들이 패소할 경우 가처분 효력이 사라져 교육 현장엔 대혼란이 벌어질 수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의대 입시는 의대 준비생뿐만 아니라 다른 수험들에게도 연쇄적으로 큰 영향을 준다”고 했다.

법적으로는 의대 증원을 백지화하는 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고등교육법 시행령상 ‘천재지변 등 교육부 장관이 인정하는 부득이한 사유’에는 수시 모집 인원과 일정을 바꿀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까지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고 시일이 너무 오래 걸린다. 의대 정원을 바꾸려면 복지부가 의대 총 정원을 다시 변경한 후 교육부가 대학별 정원을 재배정한 뒤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다시 심의해서 대학 입학 전형 기본 사항을 바꿔야 한다. 대교협이 바뀐 기본 사항을 대학들에 통보하면 대학별로 수시 모집 계획 변경안을 마련하고 다시 대교협 승인을 거쳐 수정된 모집 요강을 수험생들에게 재공고해야 한다. 정부 관계자는 8일 “수시 모집 이후엔 수능을 치고, 연말에는 정시 모집을 시작해야 한다”면서 “모집 요강을 바꾸는 절차를 지금 다시 진행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성규

의료계 안에서도 비슷한 지적이 나온다. 조승연 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장은 “내년도 증원을 지금 정지한다는 건 불가능하다”며 “(증원으로 인한) 부작용 완화 방안과 2026학년도 의대 정원 문제를 논의해야 할 시점”이라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유감 표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세브란스병원의 한 교수는 “내년도 증원 백지화가 현실적으로 정 어렵다면 대통령이 증원 결정 과정의 일부 실수를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며 “또 2026학년도에는 증원은 물론 감원까지 논의할 수 있다는 유연한 입장을 보일 필요도 있다”고 했다. 경기도의사회도 7일 성명을 내고 “의학 교육 파탄을 초래한 대통령의 사과가 (의정) 상호 간의 대화를 위한 신뢰 회복의 기본”이라고 했다.

지금은 ‘의대 증원’이 아니라 ‘응급실 기능 유지’를 논의해야 할 때라는 지적도 나왔다. 한 전직 대형 병원장은 본지에 “전공의와 정부는 서로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리는 기차”라며 “이른 시일 안에 의대 증원 문제에 합의하긴 어렵다”고 했다. 그는 “당장 환자가 죽어나가게 생겼는데, 누가 불을 냈는지 서로 따질 때가 아니다”라며 “불을 어떻게 끌 것인지를 논의하고 증원 문제는 차차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