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의료 공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일반 의사와 전공의에 이어 응급실 근무 의사와 군의관의 실명을 공개한 ‘블랙리스트’가 등장했다. 꿋꿋하게 의료 현장을 지키는 의사들을 ‘응급실 부역자’라고 조롱한 것이다. 정부는 이를 악의적 불법행위로 규정하고 경찰에 추가 수사 의뢰했다.
9일 정부와 의료계 등에 따르면, 최근 정보 기록소(아카이브) 형식의 한 인터넷 사이트에 있는 ‘감사한 의사’ 명단에 ‘응급실 부역’ 항목이 업데이트됐다. 앞서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퍼지기도 했던 일반 의사·전공의 블랙리스트에 각 병원 응급실별 근무 의사 명단을 추가한 것이다. 여기엔 응급실에 파견 근무 중인 군의관으로 추정되는 5명 등의 실명도 적혔다. ‘감사한 의사’는 다수 전공의의 현장 이탈에 동조하지 않고 근무 중인 소수 의사를 비꼬는 표현이다.
이에 대해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의료 현장에서 성실히 근무하시는 의사들을 악의적으로 공개하는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수사기관과 협조하여 엄단하겠다”며 “이미 경찰에 수사 의뢰를 했던 사이트인데, 업데이트된 부분에 문제 될 것이 있어서 경찰에 전달했다”고 했다. 정 실장은 “일부 군의관은 이런 사건(신상 공개)으로 말미암아 대인 기피증까지 겪으며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전체 리스트에 포함된 복귀 전공의, 전임의, 교수, 의대생 등을 합치면 2500여 명에 달한다. 여기엔 각종 개인 정보를 포함한 신상도 적나라하게 쓰여 있다. 휴대전화 번호, 소셜미디어 계정 정보를 비롯해 출신 대학, 사귀는 이성의 이름, 배우자의 이름·직업·근무처, 부친의 이름과 직업 등도 쓰여 있다. 모바일 청첩장 주소가 적혀 있는 이들도 있다.
일부 의사에 대해선 인신공격과 성희롱, 개인 품평도 담겼다. “미인계로 병원에서 뽑혔다” “불륜이 의심된다” “탈모가 왔다” “인성 쓰레기” 등이다.
이 블랙리스트는 접속 주소만 알면 누구나 열람할 수 있는 사실상 공개 자료다. 이 때문에 실제 신상이 공개돼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의사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