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우 대한의학회 회장은 9일 본지 인터뷰에서 정치권이 제안한 여·야·의·정 협의체에 의료계가 참여하는 문제와 관련해 “의료 개혁을 하려면 의료계 현장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이들이 대화에 참여해야 한다”며 “의료계가 참여한다면 실질적으로 정원 규모를 조정할 여지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의료계의 대화 참여 필요성을 강조한 동시에 정부를 향해서도 한발 물러서 의료계의 의견을 경청해야 대화가 시작될 수 있다고 요구한 것이다.
연세대 의대 정형외과 교수인 이 회장은 연세의료원 대외협력처장, 세브란스병원 연구부원장 및 진료부원장, 연세대 국제캠퍼스 부총장 등을 지냈다. 지난 1월부터 국내 최고 의학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를 이끌고 있다.
그는 “의정 갈등이 7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의료계 내에서 이제는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며 “의료계도 반성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그동안 대화할 준비가 안 돼 있었다. 정부가 황당한 정원 규모를 얘기하면서 모든 논의가 블랙홀에 빠져 더 이상 대화의 진전이 없었다”며 “의료계에서 감정적 입장은 다반사로 나오는 데 비해 학술적 근거나 선제적 의료 정책 제시 등이 부족했다”고도 했다. 의학 학술 단체의 총 연합체이면서 전공의 수련 교육과 전문의 시험을 관장하는 단체인 대한의학회는 그동안 의료계 내에서 강경한 입장인 전공의·의사 단체와 정부 사이에서 대화와 타협을 통한 해법을 강조해 왔다.
이 회장은 정부를 향해서도 “의료계가 믿고 대화에 참여할 수 있도록 ‘연도에 상관없이 정원 규모를 논의할 수 있다’고 일말의 여지를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의료계가 대화에 참여했을 때 정원 규모를 조정할 가능성이 있다는 걸 정부가 적극적으로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의대 증원을 아예 없던 일로 하자는 게 아니다”라면서 “증원하더라도 의료계와 정부가 함께 정원 규모를 논의할 가능성을 열어달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래야 의사·전공의를 설득해 볼 명분도 생긴다고 했다. 이 회장은 의료계가 정부와 대화에 나서지 않는 이유로 ‘의정 간 누적된 불신’을 꼽으면서 “정부가 정책 발표 초기에 의료계를 반개혁 세력처럼 몰아붙이고, 의료 현장을 7개월째 어렵게 만든 점에서 유감 표명을 해야 한다”고 했다. 또 “지금 의료계는 현실적으로 단일안을 내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정부가 계속해서 단일안을 가져오라는 조건을 내세우면 의료계에선 이마저도 밀어붙이기식으로 받아들이게 된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우리 의료 시스템은 최고 효율성을 자랑하지만 지속 가능하지는 않았다. 개혁이 필요한 시점인 것은 맞는다”면서도 “2000명 증원만으로 해묵은 필수 의료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여·야·의·정 협의체나 의료개혁특위 등에 참여했을 때 의료계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는 논의 구조가 갖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