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샌즈(62) ‘에이즈·결핵·말라리아 퇴치를 위한 글로벌 펀드(이하 글로벌 펀드)’ 사무총장은 지난 10일 본지 인터뷰에서 최근 코로나·말라리아 등 전염병이 잇따라 창궐하는 원인과 관련해 “지금은 전염병이라는 불덩이에 기후변화라는 기름을 붓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반적인 지구 온도 상승과 생태 오지의 환경 변화로 인해 질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 세균, 원충 등이 창궐할 최적의 상황이 마련됐다는 것이다. 그는 전염병의 위협에 노출돼 있는 저소득층과 제3세계 등 의료 약자를 돕는 것이 선진국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샌즈 사무총장은 “아무리 효과적인 의약품·의료기기가 있다고 해도 약자들에게 도달할 수 없다면 의미가 없다”며 “감염병 예방을 위해 쓰는 1달러는 어마어마한 결과를 낸다”고 했다.
글로벌 펀드는 2002년 설립된 국제 보건 조달 기구다. 각국 정부·기관·개인으로부터 받은 기부금으로 중·저소득국에 의약품·의료기기 등을 공급한다. 기부금은 전액 감염병 퇴치에 사용된다. 지난해 기준 81국에 13억4000만달러(약 1조7900억원) 규모의 의약품·의료기기를 공급했다. 우리나라는 글로벌 펀드에 총 1억7000만달러(약 2200억원)를 기부했다.
샌즈 사무총장은 2006~2015년 영국의 다국적 은행인 스탠다드차타드의 은행장이었다. 그는 은행장일 때 에이즈·결핵·말라리아 등과 같은 보건 문제 해결을 회사의 사회적 책임으로 정했다. 샌즈 사무총장은 “유년기를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에서 보내면서 감염병의 영향을 직접 목격했고, 여동생이 뇌염을 옮기는 모기에게 물려 많이 아팠던 적도 있다”며 “금융인으로서 국제 보건 분야는 투자 대비 수익이 매우 커서 항상 놀란다”고 했다.
-기후변화와 질병의 상관관계는.
“기후변화에 취약한 50국과 말라리아가 심각한 50국의 지도는 많은 부분이 겹친다. 원래 기온이 낮아서 모기가 살지 않던 곳까지 기온이 올라가 모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상 기후로 태풍이나 홍수가 자주 발생하면서 물 자체가 늘어나 말라리아가 늘기도 한다. 지난 6월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의 슬럼가에서 결핵 환자들을 만났다. 이들 대부분은 방글라데시 해안 지역 출신이었다. 기후변화로 잦아진 태풍, 홍수 피해로 이재민이 돼 돈도 식량도 없이 밀집된 곳에 모여 살면서 결핵에 취약해졌다.”
-한국도 말라리아 환자가 늘었다.
“북한에서 말라리아가 발생하고 있다면 한국에서 말라리아를 퇴치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모기는 여권이 없어도 국경을 넘나든다. 코로나 이전까지 북한에 결핵·말라리아와 관련해 총 1억2000만달러(약 1600억원)를 지원했다. 코로나 때 북한이 지원을 중단시켰다. 2023~2025년 기부금 중 북한에 4000만달러(약 535억원)를 할당했지만, 북한이 아직 받아들이지 않았다.”
-인권, 성평등 기금도 운영하는데.
“전염병은 가장 고립된 계층에 가장 큰 영향을 준다. 아프리카 신규 에이즈 환자 대부분이 어린 여성이다. 이들은 교육·경제적으로도 차별을 받고, 성폭력에도 노출돼 있다. 또 에이즈에 많이 걸리는 성소수자는 낙인찍히는 것이 두려워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숨는 경우가 많다. 이들을 둘러싼 장벽을 부수는 것이 전염병 퇴치에 효과적이다.”
-한국에 바라는 것은.
“전 세계는 기후변화가 보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겨우 이해하기 시작한 단계다. 한국에는 녹색기후기금 본부가 있다. 한국의 많은 보건·환경 관련 단체와 협력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