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국무총리가 12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응급의료 종합상황 관련 합동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한덕수 국무총리는 12일 ‘응급 의료 종합 상황’ 브리핑에서 “이번 추석 연휴에는 설 연휴보다 두 배 이상 많은 하루 평균 약 8000개의 당직 병의원이 환자들을 맞기로 했다”며 “추석 명절 비상 응급 대응 주간(11~25일)에 가용 자원을 총동원하겠다”고 했다. 추석을 앞두고 응급실 진료 공백 우려가 커지자, 총리가 직접 브리핑에 나선 것이다.

정부는 추석 연휴 전후 2주간 한시적으로 수가(건보공단이 병원에 주는 돈)를 인상해 권역응급의료센터 전문의 진찰료를 평소의 3.5배로 인상했다. 신속한 입원·전원을 위해 응급실 진료 후 수술·처치·마취 수가도 올리기로 했다. 이와 별도로 의사 160명, 간호사 240명 등 응급실 의료진 신규 채용에 월 37억원 규모 인건비도 지원하기로 한 상태다. 정부는 권역응급센터(44곳)보다 규모가 작은 지역응급센터(136곳) 중 15곳을 이른바 ‘거점 지역응급센터’로 지정해 심정지·뇌출혈 등 중증·응급 환자를 적극 수용하도록 하고 권역응급센터 수준 수가를 적용할 예정이다.

한 총리는 “중증 응급 질환 중 빈도는 낮지만 난도가 높은 수술·시술은 (지역) 순환 당직제를 통해 공동 대응이 이뤄질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많은 병원이 문을 닫는 추석 연휴는 나보다 더 위중한 이웃을 위해 응급실과 상급병원을 양보하는 시민의식이 절실하다”며 “큰 병이 의심되면 즉시 119에 연락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 가까운 동네 병·의원이나 중소병원 응급실을 먼저 방문해달라”고 했다.

그래픽=정인성

대한의사협회(의협)와 대한의학회, 전국의대교수협의회(전의교협), 전국의대교수비대위(전의비) 등 의사 단체도 입장문을 내고 “의사들은 정부의 태도 변화와 무관하게 추석 연휴 국민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다만 한 총리가 이날 브리핑에서 “의료 붕괴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은 결코 아니다”라고 한 것을 두고 의료계에선 “아직도 정부가 사태 파악을 제대로 못 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의료진이 번아웃(극도의 피로) 상태에서 병원 불을 켜고 겨우 지키고 있을 뿐 실제 환자 진료 역량은 크게 떨어졌다”고 했다.

전의교협은 이날 “협의회에 참여하는 전국 수련병원 53곳의 응급실 현황을 조사한 결과, 작년 대비 응급실 근무 의사가 41% 급감했고, 병원 7곳은 부분 폐쇄(진료 축소)를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의교협이 9~10일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병원 53곳의 응급실 근무 의사는 지난해 914명에서 현재 535명으로 줄었다. 전공의 이탈에 더해 전문의도 일부 이탈한 데 따른 것이다. 지방으로 갈수록 상황이 심각했다. 대전·충청(58%), 부산(54%), 광주·전남(51%)은 응급실 의사가 절반 이상 줄었다. 특히 대전·충청은 전공의를 제외한 전문의 감소율(28%)도 20%가 넘었다. 서울은 응급실 의사 감소율이 39%였고, 전문의는 4% 줄었다. 병원 53곳 중 7곳은 응급실 근무 의사가 5명 이하로, 24시간 운영이 불가해 부분 폐쇄를 고려해야 하는 수준이라고 전의교협은 밝혔다.

전의교협은 “응급실은 이미 붕괴하고 있고, 몰락의 길로 가고 있다”며 “의대 증원이 중단되고 전공의가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