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오전 11시 20분 부산 해운대구 해운대백병원 응급실. 키 150㎝ 정도 깡마른 체구의 80대 할머니가 바퀴 달린 이동 병상에 실려 안으로 들어왔다. 창백한 얼굴에 눈을 감은 할머니는 의식이 없었다.
박하영 응급의료센터장과 4명의 간호사가 동시에 할머니 병상으로 뛰어갔다. 환자의 맥박이 정상의 30%로 떨어져 있다. “빨리! 맥박부터!” 박 센터장이 다급히 지시를 내리자, 간호사들이 환자 양팔에 주사기를 꽂아 약물을 투여했다. 박 센터장은 보호자에게 “심박수가 떨어져 있어 우선 약을 써서 심장을 뛰게 하고 있다”며 “호전이 되면 정밀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박 센터장과 간호사들은 바로 흩어져 다른 14명의 환자를 긴급 처치하고, 바이탈 사인(필수 생체 신호)을 확인했다.
해운대백병원은 부산의 권역응급의료센터 2곳 중 1곳이다. 응급실 인력이 많고, 장비도 잘 갖춰진 이 지역 최고 등급 응급실이다. 이곳의 가동이 중단되면 부산의 중증·응급 환자를 긴급 처치하는 양대 기둥 중 하나가 무너지는 셈이다. 이날도 낮 12시 30분까지 22명의 응급 환자가 찾아왔다. 30~40분마다 응급 환자가 들어온 것이다. 모두 KTAS(한국형 중증도 분류) 2~3등급의 중증·중등증 환자였다.
현재 이 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모두 10명이다. 이들은 시간대별로 1~2명씩 응급실을 지키며 환자를 받고 있다. 전공의들의 집단 이탈 전에는 시간대별로 4~5명의 의사가 근무했다. 지금은 인력이 절반 밑으로 줄어들었다. 이렇게 적은 인원으로 응급실을 지키는 상황이 6개월을 넘어서면서 남은 전문의들마저 극도의 피로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 들어 사직을 하거나 병가·휴직을 하는 응급실 의사가 늘어났다. 전국의대교수협의회의 이달 9~10일 조사 결과, 부산 응급실 근무 의사는 작년 같은 기간 대비 50% 이상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해운대백병원 응급실은 매일 100여 명의 환자가 들어온다. 최근 ‘응급실 위기’ 보도가 이어지면서 경증 환자는 20% 줄었지만, 당장 치료해야 할 중환자는 되레 늘었다고 한다. 박 센터장은 “중환자 한 명이 들어오면 1시간 정도는 그 환자에게만 매달려야 해서 다른 중환자는 볼 수가 없다”며 “응급실에 (근무 시간대별로) 의사 한 명만 근무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전날에도 20대 낙상 중환자가 들어왔었다. 폐색전증(폐동맥 막힘) 증세가 나타나 심정지 상태가 됐다고 한다. 박 센터장은 “응급실 의료진이 다 붙어 에크모(ECMO·인공심폐기계) 치료를 해서 간신히 살렸다”며 “중환자 처치를 하면 응급실 간호사와 의사 모두 천국과 지옥을 몇 번이나 오간다”고 했다. 그러면서 “고통스러울 때가 있지만 우리가 아니면 이 일을 누가 하겠나”라고 했다. 응급실에 근무하는 박 센터장과 간호사, 의료 기사들은 명절 연휴에도 대부분 정상 근무를 한다.
이번 추석 연휴는 전공의 집단 이탈 후 맞는 첫 명절 연휴다. 명절엔 이동이 잦고 음식물 섭취량이 많아져 응급 환자가 평소의 2~3배로 늘어난다. 박 센터장은 “환자를 최종 치료하는 배후 필수 진료과가 막히면 응급실에서도 환자를 받을 수 없다”며 “(응급 환자가 많은) 신경외과, 흉부외과, 산과 등의 교수들이 줄당직을 서가며 분투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힘든 상황이지만 경증 환자가 동네 의원으로 주로 간다면 이번 연휴를 버틸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보건복지부는 이날 “추석 연휴 기간 하루 평균 7931곳의 동네 병·의원이 문을 연다”고 발표했다. 포털 사이트 등에 ‘응급’이라고 치면 날짜별로 문을 여는 인근 병원과 운영 시간, 응급실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복지부는 증상이 가벼울 경우 동네 병·의원이나 가까운 중소 병원 응급실을 이용해달라고 당부했다. 정윤순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중소 병원 응급실의 진찰 결과에 따라 중증이라고 판단되면 큰 병원으로 신속하게 이송할 수 있으므로 안심해도 된다”며 “당장 응급 대처를 해야 하는 큰 병이라고 생각하면 즉시 119에 신고해달라. 119는 중증도에 적합한 병원으로 환자를 바로 이송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