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병원 응급실이나 배후 필수 진료과의 의사·장비·시설이 부족할 경우, 응급 환자를 받지 않아도 책임을 묻지 않기로 한 것으로 16일 확인됐다. 119 등이 환자를 여력이 없는 응급실에 강제 배정하면 대기 시간이 길어져 환자 상태가 되레 더 위중해질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의사가 중환자 처치·수술을 하고 있는 도중에 중환자를 추가 배정하는 것은 의사들의 부담만 더 키운다는 지적도 감안한 조치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보건복지부는 15일 이런 내용을 담은 ‘응급실 운영 지침’을 전국 17개 광역시·도와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계 주요 단체에 전달했다. 이날부터 시행이 됐다.

복지부는 지침에서 “응급의료기관의 인력, 시설, 장비 등 의료 자원의 가용 현황에 비추어 응급 환자에게 적절한 응급 의료를 할 수 없을 경우는 환자 진료 거부·기피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적었다. 가령 응급실 의사와 간호사가 심정지 환자에 매달려 여력이 없을 경우에는 뇌졸중 응급 환자의 수용과 진료를 거부해도 ‘정당한 거부’로 보고 면책하겠다는 뜻이다.

지난 13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 응급실 앞에 주1회 진료 중단 안내 배너가 설치돼 있다./연합뉴스

지난 3월 대구의 10대 여학생이 응급실을 찾아 헤매다 숨진 사건은 환자 강제 배정의 폐해라는 지적도 있다. 당시 대구파티마병원 응급실은 여력이 없어 응급 의료 정보 상황판에 ‘환자 수용 불가’ 메시지를 띄웠지만, 이 환자가 강제 배정이 됐다.

이 병원 응급실 A 전공의는 이 환자의 외상은 치료했으나 정신과 입원은 시킬 수 없었다. 이 병원엔 정신과 입원 병동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A 전공의는 환자를 정신과 입원 병동을 운영하는 경북대병원으로 전원(병원을 옮김) 조치했다. 그런데 이송 과정에서 환자가 숨지자 그는 응급의료법상 ‘정당한 사유 없는 수용 거부’ 혐의로 지금도 수사를 받고 있다.

의료계 관계자들은 “환자를 처치·치료할 의사도, 시설도 없는 병원에 환자를 강제 배정한 것도 사고의 주요 원인”이라며 “환자가 잘못되면 결국 기존 환자 수술·처치에 매달린 응급실이나 배후 진료과 의사가 책임을 져야 해 엄청난 부담이 된다”고 했다.

일각에선 이번 정부의 지침이 병원 간 ‘응급 환자 떠넘기기’를 조장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의료계 인사들은 “환자를 받을 여력이 있으면서 받지 않는 의사는 없다”며 “그런 자세를 가진 사람은 전공의 이탈로 더 열악해진 응급실 근무를 포기하고 일찌감치 돈은 더 받고, 중환자 부담은 거의 없는 중형 병원으로 옮겼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