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성규

앞으로 응급실에서 폭행, 폭언, 기물 파손 등 난동을 부리는 환자·보호자는 진료를 거부당할 수 있다. 응급 환자나 보호자가 의료진의 정당한 치료 방침에 따르지 않거나, 응급실에서 인력·장비가 부족한 사정이 있는 경우 등에도 의료진이 환자 진료를 거부할 수 있다.

보건복지부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응급의료법상 진료 거부의 정당한 사유 지침’을 지난 15일 전국 17개 시·도와 대한병원협회, 대한의사협회, 대한간호사협회 등에 보내 시행토록 했다고 18일 밝혔다.

현행 법에는 의사는 정당한 사유없이 진료 요청을 거부하지 못하도록 돼 있고 이를 어길 시 징역형이나 벌금형을 받는다. ‘정당한 사유’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규정돼 있지 않아, 그동안 응급실 의사들은 난동 환자마저 진료를 해야 했다. 정부는 이번 지침을 통해 진료를 거부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를 처음 명시했다.

정부는 지침에서 ‘응급 의료 종사자의 구조·이송·응급 처치나 진료를 폭행, 협박, 위계(속임수), 위력(물리·사회적 힘), 그 밖의 방법으로 방해하는 경우’는 진료 거부·기피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환자·보호자가 의료 시설·기재·의약품과 기물을 파괴·손상하거나 점거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의료진에 대한 폭언 등 모욕죄, 명예훼손죄, 폭행죄, 업무방해죄에 해당될 수 있는 상황도 포함됐다. 환자나 보호자가 치료 방침에 따르지 않거나, 의료진의 양심과 전문 지식에 반하는 치료 방법을 요구하는 경우에도 진료를 거부당할 수 있다. 의사 등 응급 의료진과 장비가 부족할 경우도 응급 환자를 받지 않을 수 있다.

한편 정부는 이번 추석 연휴 기간 운영한 전국 29개 권역별 ‘중증 전담 응급실’에서는 중등증(중증과 경증 사이) 환자와 경증 환자를 받지 않더라도 진료 거부에 해당하지 않도록 조치했다. 한국 응급 환자 중증도 분류 기준(KTAS)에 따르면 중등증(KTAS 3)은 가벼운 호흡 부전, 출혈을 동반한 설사 등이며, 경증·비응급(KTAS 4·5)은 착란, 요로 감염, 감기, 장염, 설사 등에 해당한다. 정부는 지난 13일부터 KTAS 4·5에 해당하는 경증·비응급 환자의 응급실 진료비 본인 부담률을 이전 50~60% 수준에서 90%로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