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우(55) 고대안암병원 진료부원장(대한응급의학회 정책이사)은 이번 추석 연휴(14~18일) 중 사흘을 병원 응급실에서 보냈다. 연휴 마지막 날인 18일에도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응급 환자들을 진료했다.
이 부원장은 19일 본지 인터뷰에서 “응급실과 배후 진료과(응급 치료 뒤 진료과) 의료진이 병원을 지키고 경증·비응급 환자가 줄어 추석 연휴 동안 큰 사건·사고 없이 지나간 건 다행”이라면서도 “모두가 긴장한 채 대비 태세를 갖췄던 추석 연휴는 끝났고, 이제 당장 앞으로가 문제”라고 했다. 그는 “전공의들이 이탈한 지 7개월이 지나면서 번아웃(극도의 피로)을 호소하며 ‘더 이상은 못하겠다’고 하는 의료진도 늘고 있다”며 “이들이 응급실을 떠나기 시작하면 진료 공백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고 했다.
-추석 연휴 응급실 상황은 어땠나.
“단순 복통 등 경증 환자가 줄긴 했지만, 어제(18일)만 해도 급성 심근경색·뇌경색, 저혈압 쇼크 환자부터 오토바이 교통사고로 머리가 20cm 넘게 찢어진 환자까지 다양한 응급 환자가 왔다.”
-특히 힘들었던 점은.
“대부분 중증 환자였는데, 병원 중환자실 병상이 이미 가득 차 있어서 즉시 입원이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치료 후 퇴원시킬 수밖에 없었다. 응급실이 겨우 돌아가도 배후 진료에 공백이 생기고 중환자실 병상이 없으면 환자를 받기 어렵다. 연휴엔 내시경 검사도 쉽지 않다.”
-정부는 “큰 불상사나 사고는 없었다”고 했다.
“큰 사건·사고 없이 지나간 것과 ‘문제없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다. 중증 응급환자 진료 역량은 의정 갈등 이전보다 크게 떨어졌다. 응급실과 배후 진료과 의료진은 지칠 대로 지쳤다. 당장 연말까지 버틸 수 있을지도 장담하기 어렵다.”
현재 전국 권역·지역응급센터(180곳)에서 근무 중인 의사 수는 1860여 명으로, 전공의 이탈 전인 작년 말(2300여명) 대비 400명 넘게 줄었다. 서울 동북권 중증 응급 환자를 책임지는 고대안암병원 권역응급센터도 전문의가 9명뿐이다. 낮엔 두 명, 야간·새벽엔 한 명이 홀로 12~14시간씩 응급실을 지키고 있다. 7개월 전만 해도 전공의 포함 의사 5~6명이 함께 일했었다.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권역응급센터를 전문의 한 명이 지키는 현 상황은 비정상적이다. 혼자선 야간·새벽에 CPR(심폐소생술) 환자 한 명만 와도 다른 환자들을 보기 어렵다. 권역응급센터(44곳)에선 최소 의사 두 명이 응급실을 지켜야 환자도, 의사도 산다.”
-정부는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지원’과 ‘대화’다. 수가(건강보험공단이 병원에 주는 돈)만 올릴 게 아니라 올린 수가가 실제 중증 응급 환자를 보는 의료진에게 더 많이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한시 지원은 상시 지원으로 확대하고, 응급의학과를 포함한 필수 진료과를 보다 강력하게 지원해 의사들을 붙잡아야 한다.”
-경증 환자 분산은 맞는 방향 아닌가.
“실손보험 등이 있는데 응급실 이용 시 본인 부담금만 올리고 강제로 가지 말라고만 해선 한계가 있다. ‘죽을 만큼 아프지 않으면 응급실 가지 말라’는 메시지가 돼서도 안 된다. 그건 의료의 본질이 아니다. 환자는 본인 중증도를 제대로 알기 어렵다. 그것을 최대한 정확하고 빠르게 안내할 수 있는 시스템, 경·중증 환자 전원(轉院)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또 지역의 작은 응급의료기관도 지원을 강화해 경증 환자들이 믿고 가도록 해야 자연스럽게 ‘흐름’을 분산시킬 수 있다.”
-응급실 뺑뺑이 사례는 계속 보도된다.
“응급실 뺑뺑이라는 표현엔 문제가 있다. 병원의 수용 여건에 한계가 있는데 ‘수용 불가’나 ‘전원’을 무조건 문제로 취급해선 안 된다. 누구나 본인이 처음 간 병원에서 최종 치료까지 받길 원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 부분에 대해 국민 이해도 계속 구해야 한다.”
-대화를 위해 정부 여당이 여·야·의·정 협의체를 제안했는데.
“의제 제한 없이 정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대화에 나서줬으면 한다. 번아웃에 빠진 의사들에게 가장 절실한 건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것이란 희망이다. ‘지금은 힘들어도 머지않아 동료들이 돌아올 것’이란 희망이 있어야 조금이라도 더 버틸 수 있고, 이 분야에 남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