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 감담췌외과 서경석 교수가 2024년 9월 23일 서울 대학로 서울대의대 의생명연구원에서 한국의료의 나아갈 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전기병 기자

“1990년대 미국과 일본에서 간 이식 수술의 기초를 배워 온 우리나라가 지금은 미국·일본·프랑스 등 선진국 최고 병원 의사들을 모아놓고 첨단 수술법 특강을 하고 있어요. 의료 혁신을 이어가려면 의정 사태를 빨리 정상화해야 합니다.”

간 이식 분야의 세계적 대가인 서경석(64) 서울대병원 간담췌외과 교수는 1990년 미국 피츠버그대에서, 1997년 일본 교토대에서 간 이식 기술을 배웠다. 30여 년 지난 지금은 미국 최고 병원 중 하나인 클리블랜드클리닉과 스탠퍼드대, 일본 교토대 등에서 의사들이 그의 기술을 배우러 몰려온다. 그는 2007년엔 세계 최초로 복강경으로 기증자의 간 절제술에 성공했고, 국내에서도 최초 뇌사자 분할 간 이식, 최초 심장사 간 이식 등에 성공했다. 간 기증자의 복부 흉터를 최소화하는 그의 복강경 간 절제술을 본 외국 의사들은 “마술을 보는 것 같다”고 한다. 그가 이제까지 한 ‘복강경 간 절제술’만 500건이 넘는다.

서 교수는 “초창기 한국 의료는 미국보다 손재주가 좋고 일본보다는 자유스럽고 창의적인 문화를 통해 급속히 성장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현재의 전공의 이탈 상태가 내년까지 가면 충격이 굉장히 클 것 같다. 우리가 (의료 선진국들에) 뒤처질 수도 있다”고 했다.

지난 23일 오후 서울대병원 의생명연구원에서 만난 서경석 교수는 이날도 오전 8시부터 소아 간이식 수술을 집도하고 왔다고 했다. 적어도 10시간이 걸리는 대수술이다. 다소 지친 기색의 그는 “간 제공자의 간을 떼는 수술을 맡아 비교적 빨리 끝냈다”고 했다. 서 교수는 “지금 젊은 의사 중에서도 외과에 대한 자부심을 갖는 사람들이 있다”며 “이런 젊은 의사들이 진료뿐 아니라 교육과 연구 활동을 잘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주고, 자존감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자기 분야에서 세계 최고가 된 비결은.

“우리나라는 초창기 외국에 비해 자유로운 현장 문화가 의료 발전의 원동력이 됐다. 일본만 해도 교수가 모든 걸 맡아서 다 하는데 우리는 조교수, 부교수 등 젊은 의사들에게 기회가 많이 돌아간다. 한국 의사들의 손재주도 좋다.”

-새로운 수술법을 개발하는 이유는.

“의사의 기본적 의무는 환자를 아프지 않게 하는 거다. 제자들에게도 ‘환자들이 수술을 기피하는 건 겁나고 아파서 안 하는 것이다. 아프지 않게 하라’고 강조한다. 그게 첫째 원칙이라 새로운 수술법을 연구하는 것이다. 해부학적 이유로 기존의 수술법을 활용할 수 없는 환자도 있다. 창조적인 수술법을 개발하면 옛날엔 못 했던 걸 할 수 있고, 더 많은 환자를 구할 수 있게 된다.”

-새 수술법 발굴이 쉽지 않을 것 같다.

“의사로서의 기본 지식이 중요하다. 자기 분야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새로운 것을 할 수 있다. 배경 지식 없이 새로운 것은 절대로 나타나지 않는다. 의료의 미래를 위해서는 젊은 의사들이 교육과 훈련을 잘 받는 것이 중요하다.”

-외과 의사에게 중요한 것은.

“끊임없이 공부를 해야 한다. 수술만 잘하면 된다는 건 잘못된 생각이다. 환자에게 어떤 수술 방법을 적용할 것인지, 수술 후에는 어떻게 관리를 할 건지 꾸준히 연구하는 게 중요하다.”

간 이식 수술 대가인 서울대 의대 서경석 교수가 2024년 9월 23일 서울 대학로 서울대의대 의생명연구원에서 한국의료의 나아갈 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전기병 기자

-기억에 남는 수술은.

“1998년 국내 최초로 (2명의 환자에게 이식하기 위한) 뇌사자 분할 간 이식을 했을 때다. 그때만 해도 생체 간 이식을 거의 하지 않았다. 24시간 넘게 수술을 했다.”

-소송 부담도 적지 않을 텐데.

“간 이식 수술은 사망률이 아무리 적다고 해도 5%는 잡아야 한다. 사망 사례가 몇 년에 한 번씩은, 어쩔 수 없이 생길 수밖에 없다. 어려운 수술을 했는데 환자가 갑자기 사망하면 소송 위험에도 놓이고, 심리적으로도 굉장히 압박을 받는다. 드물지만 환자 보호자들이 ‘당신 편하게 다니나 보자’라고 하는 등 신변에 위협을 가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의 법적 보호 조치 강화 등이 필요하다.”

-전공의들이 떠난 지 7개월이 넘었다.

“지금은 대학 병원들이 2차 병원처럼 환자가 오면 빠르게 수술하기 바쁜 상황이다. 교육이나 연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이 1년 이상 이어지면 타격이 굉장히 클 것이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 힘든 상황인데, 1~2년 지나면 외국과 차이가 벌어진다. 누적되면 못 따라갈 수도 있다.”

-무엇이 가장 문제인가.

“(젊은 외과 의사들은) 내과, 영상의학과 등 다른 과와 회의를 하면서 많이 배우게 된다. 그런데 여러 학과가 모여 회의하는 것을 한 학기 이상 못 하고 있다. 교수들이 각자 개인의 일만 하고 있는 거다. 외국 학회도 자주 나가서 발표하고, 배워오고, 교류도 해야 하는데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런 면에서 분명히 뒤처질 것이다.”

-전공의들 복귀가 사태 해결의 핵심인데.

“계기가 있어야 한다. (젊은 의사들은) 우리 세대와는 다르다. 앞으로는 환자들이 의사를 보는 눈도 달라질 거고, 젊은 의사들도 ‘왜 대우도 못 받으면서 이런 직업을 해야 하느냐’는 회의가 커질 거다. 의사의 자존감을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젊은 의사들이 연구를 충분히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다.”

-필수 의료 기피 현상이 여전하다.

“외과를 지망하는 학생들도 별로 없고, 간 이식 분야를 택하는 젊은 의사도 거의 없다. 사명감 같은 의사의 본분만 내세우면 안 되지만, 그런 걸 위해서 필수 의료를 하려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거다. 그런 사람들을 찾아서 제대로 된 보상을 해주는 선순환적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다시 태어나도 외과 의사의 길을 갈 건가.

“그럴 거다. 내가 했던 일에 만족하고, 성취감을 느낀다. 외과 의사는 내 손으로 사람을 살리는 것이다. 자부심이 있다. 괴로움을 느낄 때도 있지만, 이걸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년 2월이면 정년 퇴임이다.

“제가 퇴임한다고 해서 서울대병원의 간 이식 시스템이 무너지고 잘못되는 일은 없을 거다. 저는 나가서 새로운 것을 개척해야 한다.”

-퇴임 이후 계획은.

“보라매병원으로 옮겨 하던 일을 계속 할 거다. 수술법을 정리해 유튜브에 올릴 계획도 있다. 아프리카 의사들은 간 절제술을 배울 수 없어 유튜브를 틀어놓고 수술을 한다더라. 우리나라가 잘하는 수술을 널리 알리는 게 목표다. 퇴근 이후에는 영상 편집 프로그램도 공부하고 있다.”

:서경석

간 이식 수술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 국내 최초로 뇌사자 분할 간 이식(1998년), 생체 부분 및 보조 간 이식(2001년), 심장사(死) 간 이식(2008년)을 시행했다. 1984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서울대병원 전공의와 전임의를 거쳐 1998년부터 서울대병원 교수로 일하고 있다. 2017~2020년 서울대병원 암병원장을 맡았고, 대한간암학회 회장, 한국간담췌외과학회 이사장, 대한외과학회 이사장 등을 지냈다.

☞복강경 간 절제술

장기 기증자의 간을 복강경을 이용해 떼내는 수술. 전통적인 간 절제 수술은 배 가운데를 L 자 또는 I 자로 절제한 뒤 열기 때문에 큰 흉터가 남는다. 반면 배에 작은 구멍을 뚫은 후 복강경을 넣어 수술하면 흉터가 최소화돼 간 기증자들의 만족도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