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용 삼성서울병원 암병원장은 본지 인터뷰에서 “전공의들이 돌아오려면 정부가 의대 정원 갈등 문제에 유연하게 대응하거나, 의료 수가·소송과 관련해 파격적인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은 그가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내 수술실 앞 복도에서 의료진과 대화하는 모습. /삼성서울병원

“의사 국시를 통과한 사람이 1999년 2772명에서 2019년 3115명으로 343명 늘어날 동안, 신규 외과 전문의는 같은 기간 229명에서 126명으로 103명 줄었다. 고령화로 인해 치료하기 어려운 복합 질환자가 늘고 있는데 외과 의사들이 앞으로 은퇴하면서 수술실을 대거 떠나면 ‘수술 대란’이 올 것이다.”

이우용 삼성서울병원 암병원장은 대장암 수술의 대가로 불린다. 대장항문외과 전문의인 그는 세계대장항문학회 회장도 맡고 있다. 그는 몸에 흉터가 남지 않게 배꼽 주위에 작은 구멍을 내 치료하는 ‘대장암 복강경 수술’을 국내에 정착시켰다. 이 원장은 “최근 국내에서 대장암뿐 아니라 췌장암 등의 발생 비율도 올라가고 있다. 고난도 수술을 할 수 있는 실력 있는 외과 의사가 필요하다”며 외과 의사들에 대한 집중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50대 외과 의사들이 정년 퇴임하는 10년쯤 후엔 고난도 수술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외과 의사가 줄어드는 이유는.

“우리 의료 시스템은 특이하다. 의료 수가(건보공단이 병원에 주는 돈)는 낮은데 수술은 많이 하는 ‘박리다매’에 가깝다. 외과 의사들은 수술 원가의 80%를 보전받는다. 20%씩 손해 보며 일하고 있다는 뜻이다. 수가를 정상화해야 한다.”

-외과 의사가 얼마나 줄었나.

“지난 2022년 전국 권역·지역응급의료센터(대형 병원 응급실)를 방문한 환자 55.4%(30만4725명)가 외과 수술·처치를 받았다. 정형외과는 19.2%, 흉부외과는 6.1% 등 순이다. 그런데 신규 외과 전문의는 20년 넘게 줄고 있다. 1997년 279명에서 2021년 143명으로 절반 가까이로 쪼그라들었다.”

-수가를 어떻게 정상화해야 하나.

“외과 수가를 올리는 것만으로 안 된다. 외과에는 다양한 분과가 있다. 대장, 간, 췌장 등을 다루는 분과는 응급수술 할 때가 많다. 이 분야에 정밀 유도폭탄을 던지듯 집중적으로 보상해줘야 한다. 지금은 외과를 전공하더라도 응급수술이 비교적 적은 유방, 갑상선, 혈관 등의 분야에 몰리고 있다.”

-의료 소송 부담도 크다고 한다.

“20년 전까지만 해도 의료 소송이 흔치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수술실에 보안 카메라를 달고 의사를 감시한다. 그러니 ‘방어 진료’를 할 수밖에 없다. 환자 생존율이 10%에 그쳐도 무리해서라도 수술을 진행했던 과거와 달리, 생존율이 60%여도 사망할 확률 40% 때문에 수술을 하지 않는 분위기다. 수술 후 환자가 잘못되거나 사망하면 의사 면허를 잃을 수 있다는 부담 때문이다.”

-대장항문 분과를 택한 이유가 있나.

“대장암은 다른 암 질환에 비해 완치율이 높은 편이다. 그래서 환자들과 오래 같이 지낼 수 있다. 새로운 수술법도 계속 나오고 있다. 환자들한테 해줄 수 있는 것도 많다.”

-보람을 느꼈던 순간이 있나.

“20년 전, 대장암 3기 10대 환자가 찾아왔다. 수술을 마치고 항암 치료까지 잘 견뎌냈다. 시간이 지나 그 환자가 결혼한다고 한 번 더 찾아왔다. 이후엔 세 아기를 낳을 때마다 찾아왔다. 환자 한 명을 수술했을 뿐인데 한 가족을 살렸다는 보람을 느꼈다. 외과 의사가 느끼는 기쁨이다.”

그래픽=양진경

-대장암 환자를 어떻게 흉터 없이 수술했나.

“배꼽 주변을 1㎝ 정도 잘라 치료하는 ‘복강경’ 수술을 했다. 이렇게 수술하면 흉터가 거의 남지 않는다. 2000년대 국내에선 생소한 수술 기법이었다. 최대한 수술을 적게 하고 흉터가 남지 않길 원하는 대장암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 국내에 정착시켰다. 지금은 대장암 수술의 80%를 복강경으로 한다. 외국 의사들이 이 수술법을 배우려고 우리나라를 찾을 만큼 치료 기술이 세계적으로 앞서 있다.”

-새로운 수술법을 연구하는 이유는.

“모든 걸 환자 관점으로 생각한다. 환자한테 좋은 게 가장 좋은 치료법이다. 국내에 정착시키기 위해 ‘복강경 대장 수술 연구회’를 만들었다. 관심 있어 하는 후배 의사 수십명을 모아 두 달에 한 번씩 교육했다. 혼자서 환자 수천명 살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력 있는 후배 의사들을 계속 양성해서 더 많은 중증 환자를 살리고 싶었다. 표준화된 시스템을 만들어 전 국민에게 골고루 혜택이 가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지금은 후배를 양성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가장 심각한 문제다. 세계 최고 병원이 되려면 진료·연구·교육 세 가지를 갖춰야 한다. 지금은 환자를 진료하는 데만 힘을 쏟고 있다. 연구와 교육은 거의 ‘올스톱’ 됐다. 내년 2월이 고비다. 이후엔 새로운 전문의가 배출되지 않아 전공의 다음 단계인 전임의 수가 부족해지기 때문이다. 의정 갈등이 계속되면 전공의는 물론이고 전임의 대(代)도 끊기게 된다.”

-삼성서울병원이 뉴스위크 선정 세계 병원 암 분야 3위에 올랐다.

“말 그대로 세계적인 인정을 받았다는 의미다. 제일 기뻐해야 할 사람은 국민이다. 30년 전만 해도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억대 치료비를 내고 외국에 가서 암 수술을 받았다. 지금은 그보다 낮은 가격에 세계 최고 수준의 암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세계 1등을 꿈꿔볼 만하다. 그런데 의정 갈등 사태가 너무 오래가고 있다. 빨리 해결되지 않으면 환자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를 누리지 못하게 된다.”

-의정 갈등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나.

“의정 간 협의점을 찾아야 하는데 어느 쪽도 양보하고 있지 않다. 뾰족한 답이 없어 답답하다. 전공의들이 돌아오려면 정부가 의대 정원 갈등 문제에 유연하게 대응하거나, 의료 수가·소송 관련 파격적인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외과 레지던트(전공의)는 가장 마지막에 돌아올 것이다. 지금까지 해결된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이우용 세계대장항문학회장

☞이우용

대장항문외과 전문의이자 삼성서울병원 암병원장. 세계 81국 대장항문 분야 의사들의 학술 단체인 세계대장항문학회 회장도 맡고 있다. 6000건 이상의 대장암 수술을 집도하며 복강경, 항문 내시경 미세수술 등 흉터를 최소화하는 수술법을 국내에 정착시켰다. 생식기를 통하는 방식으로 맹장을 처음 ‘무(無)흉터’ 수술한 기록도 갖고 있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삼성서울병원에서 대장암센터장, 외과 과장, 기획실장, 건강의학 본부장 등을 두루 거쳤다. 대한외과학회 이사장, 대한대장항문학회 이사장, 한국공공조직은행 이사장 등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