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은 29일 의대 증원을 둘러싼 의정 갈등과 관련해 “조만간 신설할 ‘의료 인력 수급 추계 기구’ 내 전문가의 과반수를 의사 단체 등이 추천하도록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날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위에서 의료 인력 수급 추계 기구의 구성 방향과 운영 계획에 관한 심의를 마쳤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간 의료계에선 정부의 의대 2000명 증원을 비판하며 “의료 인력 추계 과정에서 정작 전문가인 의료계 의견을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고 주장해 왔다. ‘과학적인 의사 수급 추계 기구 설치’는 전공의 7대 요구안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에 정부가 향후 의료계 의견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도록 추계 기구를 꾸리겠다고 한 것이다.
상설 추계 기구인 ‘수급 추계 전문위원회’는 의사·간호사·치과의사·한의사 등 분과별 위원회로 구성된다. 각 위원회에 전문가 10~15명이 참여하는데, 과반수는 의사 단체 등 분야별 현업 단체가 추천권을 갖는다. 의사 수와 관련해선 전문가들이 의대 졸업생 수와 인구 구조, 건강보험 자료 등을 토대로 3~5년 주기 필요 인력을 추계한다.
다만 의대 정원 등을 전문위원회가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위원회가 내놓는 추계 결과를 바탕으로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에서 최종 결정한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의료계의 전문가 과반 추천권 등 추진 취지는 바람직하지만, 당장 의대 증원 철회가 먼저”라고 했다. 대한의학회는 “추계 기구에서 결과가 나와도 보정심에서 막으면 끝인데, 현재로선 의료계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리라는 신뢰가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정부는 ‘의료 인력 수급 추계 전문위원회’에 수급 관련 의견을 제시하는 ‘직종별 자문위원회’도 설치하겠다고 했다. 자문위는 구성원 과반을 각 직역 대표로 꾸릴 방침이다. 또 추계 작업을 행정적으로 지원하는 기관으로 내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가칭 ‘의료인력수급추계센터’도 만들 예정이다. 정부는 의료계가 기구 구성에 참여하면 2026학년도 의대 정원부터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의료계는 “이미 정부를 향한 신뢰가 무너진 상태에서 결국 또 보정심이란 통로를 통해 정부가 입맛대로 의사 수 등을 결정할 것이란 우려가 많다”고 했다. 이진우 대한의학회장은 “지난달 의료개혁특위에서도 발표한 내용인데, 결국 추계 기구에서 나온 결과도 보정심에서 안 된다고 하면 끝 아니냐”고 했다. 그러면서 “하나하나 신뢰를 쌓아나가며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의료계에서 요구한 2025·2026학년도 의대 정원 얘기는 쏙 빼고 ‘이렇게 해줄 테니 들어오라’는 식이면 신뢰하기 어렵다”고 했다. 의료계 의견이 충분히 반영될 것이라는 정부 얘기를 믿을 수 없다는 취지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관계자는 “정부가 수급 추계 기구와 관련해 구체적인 내용을 발표해야 실효성을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당장 지금의 의대 증원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최안나 의협 대변인은 “추계 기구를 통한 논의엔 찬성하지만, 증원 철회가 우선”이라며 “당장 내년에 7500명이 예과 1학년 수업을 함께 들어야 하는 상황인데, 현장 시스템이 무너지고 나면 과학적 추계 논의도 의미가 없다”고 했다. 정부가 당장 의대 증원을 추진하면서 발생한 문제부터 해결하라는 얘기다. 안덕선 한국의학교육평가원장(고려대 명예교수)은 “일본의 의사 추계 기구인 ‘의사수급분과회’는 전체 위원 22명 중 의사가 16명”이라며 “정부가 얼마나 투명하게 운영할지에 관한 신뢰가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정부는 “의료계 우려가 과도하다”는 입장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의료 인력 수급 추계 기구가 낸 결론이 보정심에서 뒤집힌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면서 “보정심은 정부 정책을 결정할 때 절차상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도 “보정심에선 증원 숫자가 아니라 증원 방식을 결정하게 될 것”이라며 “당장 2026학년도 의대 정원에 반영하려면 의료계가 하루빨리 참여해서 내년 2~3월엔 추계 수치를 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