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인 지난 8월 15일 밤 11시쯤, 세브란스병원 응급실로 한 40대 일본인 산모가 119 구급차에 실려왔다. 한국으로 ‘태교 여행’을 왔다가 극심한 진통을 느낀 27주 차 임신부였다. 자궁 내 아기가 반대로 들어서 있는 악조건이었다. 분만을 담당한 이준호 교수는 “자궁경부가 열리면서 산통이 심해져 응급 분만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했다.
8월 16일 오전 1시 30분, 제왕절개 수술을 통해 690g의 초(超)미숙아가 태어났다. 아기는 태어난 직후 신생아집중치료실(NICU)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다. 맥박과 호흡 등 바이탈 사인(필수 생체 신호)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자, 태어난 지 한 달여쯤 지난 추석 연휴에 일본으로 이송이 결정됐다. 아기 몸무게도 1.4kg으로 늘었다. 하지만 상황이 만만치 않았다. 미숙아들은 체온 조절 등을 할 수 없어 인큐베이터에 들어있는 상태로 이송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전문 의료진도 동행해야 했다.
주치의인 박민수 교수 등 신생아과 교수들은 회의 끝에 아기를 직접 일본으로 이송하기로 결정했다. 이수민 교수가 공항 당국과 항공사(대한항공), 일본 측과 긴밀한 연락을 주고받으며 ‘이송 작전’을 짰고, 한정호 교수와 조수진 간호사가 동행을 자원했다. 아기가 태어난 날 당직 근무를 하고 있던 한 교수는 출산 직후부터 아이를 돌봐왔고, 조 간호사는 일본어에 능통했기 때문이다.
‘디데이(D-Day)’는 지난 4일. 오전 6시 아기가 들어있는 인큐베이터를 실은 앰뷸런스가 병원을 나섰다. ‘1차 목적지’는 오전 9시 김포공항을 출발해 일본 도쿄 하네다공항으로 가는 대한항공 항공편. 아기와 의료진를 태운 앰뷸런스는 곧장 활주로로 직행했다. 사전에 공항 측 협조를 받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앰뷸런스에 동승했던 아기 엄마는 공항 출국장을 거쳐 정상 수속을 밟고 항공기에 탑승했다.
국내에서 태어난 초미숙아를 인큐베이터에 넣어 해외로 이송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한항공은 항공기 내 좌석 6개의 의자를 젖혀 인큐베이터를 설치할 공간을 마련했다. 간이 커튼도 설치해 아기에게 다른 승객들의 관심이 쏠리는 것을 막았다.
한 교수와 조 간호사는 비행 내내 인큐베이터 모니터로 아기의 바이탈 사인을 확인했다. 난기류가 심한 일부 구간에서는 아기를 인큐베이터에서 꺼내 품에 안고 가기도 했다. 인큐베이터가 흔들려 아기가 다치는 상황에 대비한 것이다.
오전 11시 40분쯤 항공기가 일본 도쿄 하네다 공항에 도착했다. 다른 승객들이 항공기에서 다 내린 후 일본 국립성육의료센터 의료진이 탑승했다. 아기를 인계받기 위해 온 것이다. 한국 의료진으로부터 아기의 건강 상태에 대한 설명을 들은 일본 측 의료진은 아기를 겉싸개로 꽁꽁 싸서 활주로에 대기하고 있던 앰뷸런스로 이동해 아기를 병원으로 이송했다.
아기 엄마는 일본에 도착한 직후 한 교수와 조 간호사에게 울먹이며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고 한다. 조 간호사도 울먹이며 아기와 작별 인사를 했다. 한 교수는 “환자의 안전을 우선시하고, 환자와 보호자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이송을 지원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아기 엄마는 일본으로 출발하기 전날, 세브란스병원 신생아집중치료실 의료진에게 서툰 한국어로 쓴 편지를 전달했다. “갑자기 한국 생활이 시작되면서 고독과 불안으로 가득 찼는데, 세브란스 의료진에게 격려를 받았고 그것이 유일한 ‘힐링’이었습니다. 아기를 크게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아기가 크면 (세브란스병원에) 놀러올 테니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