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경기 성남시 분당차병원에서 윤도흠 성광의료재단 원장이 “집단 휴학 중인 1학년이라도 지금 돌아와 수업을 듣도록 해 내년 총 7500명이 동시에 1학년 수업을 듣는 사태는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호 기자

“시간이 얼마 없다. 가장 급한 건 의예과 1학년 학생들이다. 1학년부터라도 이달 말까지 학교로 돌아와 ‘1.5학년’으로 가을 학기 수업을 듣도록 해야 파국을 막을 수 있다.”

윤도흠(68) 차의과학대 의무부총장 겸 성광의료재단(차병원) 의료원장은 10일 본지 인터뷰에서 “1학년들이 복귀하지 않는 상황에서 내년 신입생이 들어와 7500명이 한꺼번에 같이 수업을 듣는 참사만은 막아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가 말하는 ‘1.5학년’은 현재 1학년이 다음 달부터라도 수업을 듣도록 하는 걸 말한다.

윤 원장은 “(7500명 수업 시) 1학년은 향후 6년간 교육 환경도 엉망이 되겠지만 전공의 임용 때나 전문의가 된 후에도 계속 7500명이 경쟁해야 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에 놓이고, 다른 학년보다 훨씬 큰 짐을 계속 짊어져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선배 의대생·전공의, 교수, 정부, 의대생 부모들까지 머리를 맞대 일단 1학년들만이라도 이달 말까지 돌아올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했다.

신경외과 전문의인 윤 원장은 척추 수술 분야 권위자다. 세브란스병원장·연세의료원장을 지낸 뒤 2021년부터 성광의료재단 의료원장을 맡고 있다. 지금도 일주일에 이틀은 외래진료를 보고, 주 1회 척수 종양·목 디스크 수술 등을 집도한다.

수술 중인 윤도흠 원장 - 윤도흠 성광의료재단 원장이 수술을 집도하는 모습. /분당차병원

-다음 주면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지 8개월이 된다.

“전공의들과도 얘기를 나눠봤지만, 지금 같은 대치가 이어진다면 내년 3월은 물론 최소 내년 9월 전까지 복귀 움직임이 없을 것으로 본다.”

-사태 해결을 위한 실마리는 없나.

“2025학년도 의대 증원 백지화를 포함해 전공의들의 7대 요구 사항이 있지 않은가. 전공의 입장에선 그 조건이 관철돼야 복귀 명분이 생긴다는 것이다.”

-올해 수능(11월 14일)이 한 달밖에 안 남았는데.

“정부 입장에선 입시 문제가 걸리겠지만, 전공의 반응은 이미 예견됐던 일이다. 지방 국립대 등 의대 정원이 200명으로 대폭 늘어난 곳이 적지 않다. 그런 대학 중심으로 일단 내년도 증원분(1497명)을 1000명 아래로 줄이고, 2~3년 정도 증원을 유예하면서 그 기간 과학적인 의사 수급 추계를 거쳐 추후 의대 정원을 확정하는 것이 어떤가 한다.”

-그러면 전공의들이 돌아올까.

“절반도 안 돌아올 수 있다. 하지만 설득할 명분은 생긴다. 내년 한 해 1000명 미만으로 늘린다면 대학 입장에서 교수·시설 확보 부담도 최소화할 수 있다. 1500명 더 가르치려고 교수·시설을 늘렸는데, 이듬해 300명으로 줄어든다면 뒷감당을 어떻게 하겠느냐.”

-필수·지방 의료 의사가 부족하다는 주장엔 동의하나.

“나도 500명가량 증원은 필요하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필수·지방 의료 못지않게 기초 의학을 연구하는 의사 등이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이 컸다. 필수·지방 의료는 보상이 너무 적은데 책임은 커서 안 가는 것이다. 지방은 연봉 4억원에도 의사를 못 구한다는데, 1억8000만원에 3명을 구한다고 하면 지원자가 나온다. 또 의사들은 같이 일하면서 실력을 키우는데, 지금 지방의 필수 의료는 그게 어렵다.”

-기초 의학 연구자가 부족하다고 했다. 척추 수술 분야를 개척해온 의사이자 주요 병원 두 곳을 14년간 키워온 경영자로서 볼 때 그간 한국 의료는 어떻게 성장했나.

“아주 오래전부터 미국에서 새 수술법이 나오면 우리 의사들이 건너가 3개월이면 배웠고, 그들보다 더 잘했다. 나도 1993~1995년 뉴욕대병원에서 경추 수술을 배웠다. 그렇게 기술을 배워온 전문의들, 잘 수련한 전공의들 덕분에 ‘싸면서도 질 높은’ 의료를 발전시켰다. 다만 기초 의학은 그렇게 키울 수 없다. 지금 우리 의료의 수준은 상당히 높지만, 노벨의학상은 절대 나올 수 없는 구조다.”

-정부는 대형 병원 전공의 의존도를 줄이고 전문의 중심 병원으로 가겠다고 했는데.

“지난 정부부터 건강보험 재정 고갈 문제가 더 심각해졌고, 정부가 의료 개혁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배경은 알겠지만 추진 순서가 잘못됐다. 의대 2000명 증원을 먼저 던져놓고 다른 대책을 끼워맞추다 보니 ‘전문의 중심 병원’, ‘의대 5년제’ 같은 얘기가 나온다. 같은 업무량이면 전공의 대비 전문의 인건비가 5~10배 더 드는데, 오래 돌봐야 하는 중증 환자 비율을 70%로 올리고 전공의 비율은 20%로 낮추라고 한다. 전공의들은 중환자를 보면서 환자의 고통을 이해하게 되는데, 그런 교육도 사라지게 된다. 또 의학이 발전하면서 내가 의대 다닐 때보다 배울 게 5배 이상 늘었다. 어떻게 5년 만에 교육이 가능하겠나.”

-그래도 많은 환자와 국민은 하루빨리 의정 대화가 시작되길 원한다.

“정부가 먼저 진정성을 갖고 적극 나서줘야 한다. 또 의료 개혁을 위한 비용이 더 필요하다면 국민에게 ‘앞으로도 종전같이 의료를 이용하려면 건보료가 더 올라갈 수 있다’는 사실도 설명해야 한다. 그런 모습을 통해 서로 조금씩 신뢰가 쌓일 수 있다. 의료계도 거친 언어를 써가며 공개적으로 정부나 의료계 내부 인사를 비난하는 모습은 국민이 보기에 좋지 않고, 사태 해결에도 도움이 안 된다. 이대로 가면 공멸이란 생각으로 정부도, 의료계도 ‘국민 건강’을 보고 가야 한다.”

☞윤도흠

1956년생. 국내외에서 인정받는 척추 수술 분야 권위자다. 연세대 의대에서 박사(신경외과학)까지 마친 뒤 조교수 시절인 1993년 미국 뉴욕대병원에서 연수하면서 척수 손상 치료법 등을 배웠다. 이후 세브란스병원에서 한 해 500명이 넘는 난치성 척추병 환자를 수술했다. 2003년 아시아 의사 최초로 경추 인공 관절 치환술에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