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가족공원 작은결혼식. /조선일보 DB

미혼 남녀 중 결혼 의향이 있는 이들의 비율이 3월 조사보다 4.4%포인트 올랐다는 조사 결과가 14일 나왔다. 또 자녀가 없는 남녀 가운데 출산 의향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같은 기간 5.1%포인트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주거·양육 지원 강화 등 정책 효과로 나타난 저출생 반전 신호”라고 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우리가 특히 취약한 ‘일·가정 양립’에서 더 획기적인 진전이 필요하다”고 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는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8월 31일부터 9월 7일까지 전국 25~49세 259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9월 결혼·출산·양육 인식조사’ 결과(표본 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2.2%포인트)를 이날 발표했다. 앞서 지난 3월 같은 조사에 이어 변화를 알아보기 위해 다시 조사한 것이다.

미혼 남녀 중 결혼하고 싶다고 답한 비율은 3월 조사(61%) 대비 4.4%포인트 오른 65.4%였다. 연령대 가운데 30~39세 여성의 결혼 의향이 48.4%에서 60%로 급증했다. 또 무자녀 남녀 중 출산 의향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3월(32.6%)보다 5.1%포인트 높은 37.7%였다. 그중에서도 결혼은 했지만 아직 자녀가 없는 이들의 출산 의향이 3월(42.4%) 대비 8.3%포인트 오른 50.7%였다. 응답자들은 최근 정부의 저출생 대책 중 가장 기대효과가 큰 대책으로 ‘신혼·출산·다자녀 가구 주택 공급 확대’(73.6%)를 꼽았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주형환 저고위 부위원장은 “저출생 대책 발표 등으로 국민 인식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한 이후 정부는 육아휴직 급여 상한 인상(월 최대 250만원), 신혼·출산가구 주택 공급 확대 등 저출생 종합 대책을 발표했다. 특히 결혼·출산을 많이 하는 집단이면서 정책 변화에 민감한 30대 여성이 이에 반응한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다만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들이 저출생 과제 중 ‘눈치 보지 않고 마음 편히 육아 지원 제도를 사용할 여건 조성’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꼽는 등 현실에선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지적도 많다.

내년 6월 결혼을 앞둔 직장인 A(35)씨는 이미 남자친구에게 ‘딩크(맞벌이면서 자녀가 없는 부부)’로 살고 싶다고 얘기한 상태다. 그는 “육아를 도와줄 양가 부모님이 없는 상황에서 회사 선배들처럼 육아와 일을 병행할 엄두가 안 나고, 경력 단절은 절대 원치 않는다”면서도 “결혼 후엔 어떻게 마음이 바뀔지 아직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회사에서 육아휴직 같은 제도를 쓸 때 눈치 안 봐도 되고, 워킹맘에 대한 정부 지원도 지금보다 훨씬 더 강화된다면 출산을 고민할 것 같다”고 했다.

저고위의 9월 조사에서 ‘자녀가 필요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전체의 68.2%로 3월 조사(61.1%)보다 7.1%포인트 증가했다. 지난 조사에서 응답률이 가장 낮았던 25~29세 여성(34.4%)의 경우, 이번엔 13.7%포인트 오른 48.1%가 ‘자녀가 필요하다’고 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유의미한 변화 수치”라며 “육아휴직과 신혼부부 주택 특별공급 확대 등 여러 정책으로 결혼·출산에 관한 젊은 층의 두려움이 조금씩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래픽=김성규

이번 조사에서 가장 눈에 띈 분야는 ‘출산 의향’이었다. 자녀가 없는 남녀 가운데 ‘자녀를 낳을 생각’이라고 답한 비율은 37.7%였다. ‘낳지 않을 생각’은 24.8%였고, 나머지는 ‘생각 중’(26.9%)이라거나 ‘생각해본 적 없다’(10.6%)고 답했다. 아직 확실히 마음을 정하지 못한 집단이 37.5%에 달한다는 것이다. 특히 현재 자녀가 없는 30대 여성의 경우엔 ‘낳을 생각’(35.7%), ‘낳지 않을 생각’(26.3%)보다 아직 ‘미정’(38%)이라는 응답이 더 많았다. 25~29세 여성도 ‘낳을 생각’(28.1%), ‘낳지 않을 생각’(34.1%) 보다 ‘미정’(37.9%)이 많았다.

문제는 여전히 출산·양육 지원 정책에 대한 만족도가 떨어진다는 점이다. 현재 자녀가 있는 이들은 추가 출산을 하지 않는 이유로 ‘자녀 양육비 부담’(46.1%), ‘양육 자체의 어려움’(40.7%)을 주로 꼽았다.

응답자들은 ‘가장 중요한 저출생 대책’으로 눈치 보지 않는 육아 지원 제도 사용 여건(88.1%·복수 응답), 필요할 때 휴가‧휴직 사용(87.5%), 소득 걱정 없이 휴가‧휴직 사용(87.5%) 등을 꼽았다. 상위 3개가 모두 일·가정 양립 분야 과제였다.

앞으로 강화해야 할 정책 과제로는 ‘육아기 유연근무 사용 활성화’(84.4%), ‘소아 의료 서비스 이용 편의성 제고’(83%)를 많이 꼽았다. 30대 여성의 경우엔 육아기 유연근무 사용 활성화(86.6%) 못지않게 육아휴직 최대 기간 확대(84.7%)도 많이 꼽았다. 내년 2월부터는 부모 모두 3개월 이상 육아휴직을 쓰는 경우에 휴직 가능 기간이 1년 6개월(종전 1년)로 늘어나지만, 공무원(3년) 등과 비교할 때 ‘직장을 유지하면서 육아할 수 있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유재언 가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이번 조사에서 20~30대 여성의 출산 의향이 3월 대비 높아진 점, 최근 출생아 수가 전년 동월 대비 반등하는 추세란 점은 분명 의미가 있다”면서도 “지난 3월은 출생아 수 등 저출생 상황이 워낙 심각하던 때였다는 점을 감안해야 하고, ‘신생아 특례대출’ 같은 체감도 높은 정책이 앞으로도 계속 나와줘야 출산율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