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미추홀구 한 병원에서 간호사들이 신생아들을 돌보고 있다./뉴스1

우리나라 전체 출생아 열 명 중 한 명은 임신 37주 이내에 태어난 조산아인데, 이를 받을 수 있는 산과(産科) 교수는 급감하고 있다. 전국 40개 의대 중 3곳은 조산처럼 산모와 아기의 생명이 모두 위험해질 수 있는 ‘고위험 분만’을 담당하는 산과 교수(전임 교원 기준)가 ‘0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방은 더 심각해 충북의 경우 산과 교수가 1명밖에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산과 교수 부족이 저출산 반등의 암초로 부상했다”고 지적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출생아 23만명 중 조산아 비율은 9.9%(2만2000여 명)였다. 10년 전인 2013년 당시 비율(6.5%)의 1.5배로 증가했다.

그래픽=백형선

그런데 대한산부인과학회에 따르면, 전국 40개 의대 중 산과 전임 교수는 128명에 불과하다. 의대 소속이 아닌 부속 병원 소속으로 1~2년마다 재계약을 하는 임상 교수는 제외한 수치다. 단국대·건양대·가톨릭관동대 의대엔 산과 전임 교수가 ‘0명’이다. 전체 의대의 7.5%다. 이 의대 수련 병원이 있는 충남 천안(단국대병원), 대전 서구(건양대병원), 인천 서구(국제성모병원) 인근의 고위험 산모들은 조산 징후가 와도 빠른 분만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얘기다. 오수영 삼성서울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고위험 분만이 급증하는 우리나라에 이를 담당할 산과 교수가 없다는 것은 재앙”이라고 했다.

전국 40개 의대에 소속된 대학 병원 88곳은 중환자 치료를 전담하는 대형 병원이다. 하지만 전체 의대 중 55%(22곳)는 산과 교수가 많아야 2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게티이미지코리아

대한산부인과학회에 따르면, 전국 의대 중 산과 전임 교수가 아예 없는 곳은 3곳(7.5%)이고, 1명만 있는 곳도 11곳(27.5%)이다. 가천대·동국대·동아대·대구가톨릭대·부산대·연세대(원주)·영남대·원광대·충북대·한림대·한양대 의대다. 또 아주대·이화여대·충남대 등 주요 의대 등 8곳은 산과 교수가 2명이다. 조산 등 고위험 분만은 점점 느는데, 분만 인프라는 날로 취약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지역별 편중도 심하다. 대한산부인과학회는 “올 6월 기준, 산과 교수의 64%는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에 몰려 있다”고 했다. 서울이 48명(37.5%)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은 경기(31명), 부산과 대구(각각 9명) 순이었다. 강원(5명), 광주·전남(5명), 전북(4명)이 뒤를 이었고, 인천·충남·경남·제주는 3명씩, 경북과 대전은 2명씩이었다. 충북은 1명으로 꼴찌였다. 산과 교수가 가장 많은 차의과대학(경기도 소재) 한 곳의 산과 교수 숫자(27명)가 수도권과 부산·대구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의 산과 교수 총합(28명)과 거의 같다.

일러스트=김성규,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권혜인 *산과 전임 교원 기준(임상 교수 제외)

전문가들은 “만혼(晩婚)이 늘고 있기 때문에 전체 출생아 중 조산 등 고위험 분만을 통해 태어나는 아기들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필수 의료 지원이란 좁은 의미가 아니라, 저출생 해결이란 국가적 차원에서 산과 교수 확대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김영미 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동서대 교수)은 “산과에 대한 인센티브 차원의 대책은 이제 효과가 없을 것”이라며 “여성이 임신을 하면 분만 때까지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디테일하게 규정한 국가적 차원의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했다. 김영주 이대목동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국가가 나서서 산과 교수를 길러야 한다”며 “남아 있는 산과 교수 100여 명도 평균 연령이 54세로 고령화되고 있다. 이대로면 출산 자체가 위험해진다”고 했다.

산과 교수들은 10여 년 전부터 정부에 고위험 분만 등에 대한 수가(건보공단이 병원에 주는 돈) 현실화와 소송 부담 경감을 요구해 왔다. 정부는 작년 말에야 고위험 분만 수가를 100% 올렸지만, 여전히 미국·일본의 10분의 1 정도 수준이다.

홍순철 고려대 안암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현재 분만 수가는 60만원 정도인 데 반해, 소송이 걸리면 10억~15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환경”이라고 했다. 그는 “산과는 이미 기피 과가 돼 전공의도 거의 없기 때문에 교수들이 당직을 선다”며 “365일 중 180일을 당직 선 적도 있다”고 했다.

이로 인해 사명감으로 버티던 산과 교수들도 줄줄이 사직하고 있다. 대한산부인과학회 관계자는 “올 2월 전공의 이탈 후 최근까지 전체 5%에 육박하는 6명의 산과 교수가 사직했다”고 했다. 이 6명에는 수도권 대학 병원의 부원장을 지냈다가 올 6월 미국으로 건너가 미 서부의 한 병원에서 가정의학과 레지던트 수련을 받고 있는 산과 교수도 포함돼 있다. 보험 회사에 취업한 교수도 있다. 대한산부인과학회는 2041년엔 산과 교수가 지금의 절반 밑인 59명으로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홍석철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생애 초기의 건강이 평생의 경제적 생산성에 큰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며 “산과 교수가 조산이나 저체중으로 태어난 아기들의 건강을 초기에 집중 관리하지 않으면 사회적 비용이 클 수밖에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