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9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 '전공의를 활용한 병원 운영은 더 이상 존재하기 힘들 것'이라고 적은 인쇄물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2월부터 이어진 의정 갈등 여파로 서울 ‘빅5′ 병원 중 4곳(서울아산·세브란스·서울대·서울성모병원)이 올 상반기에만 총 2135억원 적자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 상반기엔 당기순이익이 약 550억원이었지만 올해 이익이 2685억원이나 급감해 적자를 본 것이다. 병원 규모가 가장 큰 서울아산병원과 세브란스병원의 경우, 이익이 작년 상반기 대비 각각 약 900억~1000억원 감소했다. 전공의 이탈 후 입원·수술이 반 토막 나면서 수익은 줄었는데, 인건비 등 고정 지출은 줄이지 못해 손실이 확대된 것이다.

16일 국민의힘 한지아 의원이 보건복지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주요 사립대 병원 24곳 중 20곳(83%)이 작년 상반기보다 경영 실적이 악화됐다. 작년 상반기엔 평균 70억원 순이익을 기록했지만, 올 상반기엔 이익이 104억원 감소해 평균 34억원씩 순손실을 기록했다. 24곳 가운데 절반(12곳)은 올해 적자로 전환됐다.

세브란스병원은 작년 상반기 737억원 순이익을 냈지만 올 상반기 이익이 897억원 감소해 160억원 순손실을 기록했다. 서울성모병원의 경우, 작년 상반기 176억원 순이익이었으나 올해 상반기엔 131억원 순손실을 봤다. 또 병상 수(2764병상)가 가장 많은 서울아산병원은 작년 상반기 749억원 순이익을 냈지만, 올 상반기엔 965억원 이익이 감소해 216억원 적자를 봤다.

그래픽=김현국

병상 수가 많으면서 전공의 의존도는 높았던 대형 병원들의 타격이 더 컸다. 국립대병원도 사정은 비슷했다. 서울대병원 등 주요 국립대 병원 12곳의 작년 상반기 순손실은 평균 86억원이었지만, 올해는 278억원으로 손실이 192억원 불어났다. 서울대병원과 분당서울대병원의 이익이 각각 516억원, 727억원 감소했고, 부산대병원·충북대병원도 이익이 200억원 넘게 쪼그라들었다.

빅5 병원 관계자는 “90% 넘던 병상 가동률이 전공의 이탈 후 50%대로 떨어졌다”며 “각 병원이 적자 폭을 줄이려 갖은 애를 쓰고 있지만, 새로운 시설·장비나 의료진 교육 등에 대한 투자는 사실상 모두 중단된 상태”라고 했다.

대형 병원들은 신규 인력 채용을 중단하고 간호사를 비롯한 직원들을 대상으로 무급 휴직 신청도 받고 있다. 정부는 각 병원에 건강보험 급여를 우선 지급하고 추후 정산하는 식의 ‘건보 급여 선지급’에 나섰지만, 병원 경영난을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란 지적이 나온다. 정부 지원을 받지 않는 사립대 병원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의료계에선 “병원들이 적립해둔 ‘고유 목적 사업 준비금’을 인건비 등으로 쓸 수 있도록 제한을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고유 목적 사업 준비금은 병원이 미래에 투자할 목적으로 저축해두는 돈으로, 일정액을 과세 대상 소득에서 제외해주는 세제 혜택이 있다. 각 병원은 이 준비금을 병원 증축 등에 쓰고 있는데, 인건비 등으로 사용할 경우엔 ‘용도 외 사용’으로 간주돼 앞서 감면받았던 법인세에 이자까지 내야 한다.

한지아 의원은 “경영 상황이 정상화될 때까지 한시적으로 각 병원이 고유 목적 사업 준비금을 인건비 등으로 쓸 수 있도록 법인세법 시행령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올 상반기 기준 세브란스병원(5552억원)을 비롯해 사립대 병원 18곳이 평균 648억원의 고유 목적 사업 준비금을 보유하고 있다. 서울대병원과 분당서울대병원도 각각 1939억원, 2717억원을 적립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