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갈등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지난 18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 응급의료센터 앞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월 시작된 의정 갈등이 장기화하면서 주요 대학 병원의 필수 의료과를 중심으로 전문의 이탈이 줄을 잇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공의들이 떠난 뒤 체력·정신적 부담이 커지자, 전문의들이 번아웃(극도의 피로)을 호소하며 사직서를 내고 있는 것이다.

20일 국민의힘 한지아 의원이 보건복지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2~8월 전국 주요 대학 병원 88곳에서 사직한 전문의는 2757명으로 작년 같은 기간(2559명) 대비 약 8% 늘었다. 특히 생명과 직결된 이른바 ‘바이털(vital)과’를 중심으로 사직자가 많았다.

사직 전문의 수는 내과가 864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소아청소년과(194명), 정형외과(185명), 외과(174명) 순이었다. 전체 전문의 숫자 대비 사직자 비율은 응급의학과가 가장 높았다. 2~8월 대학 병원 88곳에서 사직한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130명으로, 1분기 기준 전체 응급의학과 전문의(2370명)의 5.5%에 달했다. 이어 사직자 비율이 높은 과는 내과(4.7%), 신경과(4.5%), 심장혈관흉부외과(4.0%) 순이었다. 심장혈관흉부외과의 경우, 전체 전문의 1170명 중 47명이 사직했다.

수도권 한 대학 병원장은 “교수 등 전문의들이 당직을 서며 전공의 빈자리를 메우고 있지만, 점점 지쳐가면서 환자 진료 역량이 떨어지고 있다”며 “근무 여건이 더 열악한 지방은 전문의 추가 채용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정부는 대학 병원의 전공의 의존도를 낮추고 전문의와 PA(진료 지원) 간호사 비율을 높여 ‘전문의 중심 병원’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전문의 기근 현상은 한동안 계속 이어지고, 내년엔 대학 병원 간 전문의 쟁탈전이 훨씬 치열해질 것이란 전망이 많다. 내년 초 전문의 자격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전공의 인원도 현재 576명으로 올해(2782명)의 5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20일로 전공의들이 지난 2월 수련 병원을 떠난 지 8개월이 지났다. 전공의 대부분이 복귀를 거부하면서 전문의들의 진료 부담이 커졌다.

한지아 의원이 교육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북대병원 내과의 경우, 의정 사태 전인 지난 1월엔 교수들이 평균 한 번만 당직을 섰는데, 6월엔 5회 당직을 섰다. 충북대병원 소아청소년과도 교수 당직이 1월 2회에서 6월 5.3회로 늘었다. 교수뿐 아니라 전임의(세부 전공 중인 전문의) 등도 사정은 비슷하다. 서울대병원 외과 전문의(교수 제외)의 월평균 당직 횟수는 1월 2.3회에서 6월 7.5회로 늘었다.

지방 대학 병원은 전문의들이 전문·2차 병원뿐 아니라 수도권 병원으로 옮기는 경우도 많아 상황이 더 심각하다. 동료 전문의가 있는 곳에 다른 전문의도 몰리는 ‘빈익빈 부익부’도 나타나고 있다. 대전 건양대병원은 연봉 3억2600만원에도 응급의학과 전문의를 못 구해 최근 4억2000만원에 재공고를 냈다. 지방의 한 국립대 병원 교수는 “사명감만으로 대학 병원에서 일하는 전문의가 많은데, 지방엔 더 파격적인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며 “전문의 추가 배출에 차질이 없도록 하고 업무 환경도 개선해서 더 많은 전문의가 대학 병원을 택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 줘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