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근 신임 대한노인회장이 21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제19대 대한노인회장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내 최대 규모 노인 단체인 대한노인회가 법적 노인 연령을 65세에서 75세로, 연간 1년씩 10년간 단계적으로 올리자고 정부에 공식 제안했다. 노인 인구와 기대 수명이 늘어나는 초고령 사회 진입을 앞두고 노인의 기준을 재정의하자는 것이다. 기초연금이나 대중교통 이용 지원 같은 노인 복지 혜택을 뒤로 미루는 대신, 일하고자 하는 노인에겐 정년을 연장하고 기존 최고 임금의 40% 수준에서 시작해 점차 낮춰가는 임금피크제를 적용하자는 제안도 내놨다.

이중근(83) 신임 대한노인회장(부영그룹 회장)은 21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제19대 대한노인회장 취임식에서 “현재 1000만명인 노인 인구가 2050년에는 2000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40%에 달한다”며 이같이 제안했다. 노인 연령을 상향 조정하려면 노인복지법 개정이 필요하다. 1969년 노인 권익 신장을 위해 설립된 대한노인회는 회원 300만명을 보유한 국내 최대 노인 단체다. 이 회장은 제17대 회장(2017~2020년)을 지내다 중도 사퇴했지만, 지난 8월 투표로 다시 회장에 당선됐다.

이중근 신임 대한노인회장이 정부에 제안한 ‘법적 노인 연령 상향’의 배경엔 이전보다 훨씬 건강하고 생활 수준도 높아지고 있는 ‘신노년’의 등장이 있다. 특히 1세대 베이비부머(1955~1963년 출생자)가 은퇴했는데, 이들 중 상당수는 고소득, 고학력, 높은 건강 수준을 가지고 있다. 이 회장은 “현재 65세 연령대에 (본인을) 노인이라고 하는 사례는 거의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우리나라 기대 수명은 1970년 62.3세에서 2022년 82.7세로 20.4세 늘었다. 하지만 1981년 제정된 노인복지법에서 65세로 경로 우대를 적용한 이후 43년간 노인 기준에 변화가 없었다.

한편 노인 빈곤율(2022년 38.1%)이 높지만, 65세 이상 소득 하위 70%에 광범위하게 지급하는 기초연금(월 최대 33만4810원)은 노인 빈곤 개선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올 한 해에만 기초연금에 예산 24조4000억원이 투입된다.

만약 이 회장의 제안대로 노인 연령이 65세에서 75세로 연장될 경우, 현재 60세인 법적 정년을 65세 등으로 연장하는 논의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국가에서 정년 연장 같은 제도를 도입한다면, 정년 연장 첫해(65세)에는 정년 피크 임금의 40%를 받고, 10년 후인 75세에도 20% 정도 받아 (노인의) 생산 잔류 기간을 10년 연장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이를 통해) 연금 등 노인 부양을 비롯한 초고령화 사회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2016년부터 적용된 ‘60세 정년’과 함께 도입된 임금피크제는 정년 전 수년간 최대 50% 정도의 임금을 삭감하는 제도인데, 노인층에는 시간제 근무 등을 전제로 최대 80% 삭감까지도 적용할 수 있다는 제안이다. 이 회장은 부영그룹 자체적으로도 이 같은 임금피크제를 선제적으로 적용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부영그룹 직원들에게 ‘자녀 한 명당 1억원’이란 파격적 출산 장려금을 지급해 저출생 해결사로 나섰던 이 회장이 ‘고령화 해결사’로 나선 것이다.

이 같은 제안 배경엔 저출생·고령화로 무너지기 시작한 우리나라 인구 구조가 있다. 이 회장은 “(미래 생산 가능 인구인) 중추 인구 2000만명이 2000만명의 노인 복지에 치중하다 보면 (경제를 성장시킬) 생산 인구가 없게 되겠다는 염려가 있다”고 했다. 지난 7월 기준 국내 노인 인구는 1000만명을 넘어섰고 2050년엔 2000만명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생산 연령 인구 100명이 부양해야 할 고령 인구를 뜻하는 노년 부양비는 올해 27.4명에서 2072년 104.2명으로 늘어난다. 향후 국가가 감당해야 할 사회보험 지급액도 급증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국민연금과 공무원·사학·군인연금의 4대 공적연금 지출액이 올해 77조원에서 내년 85조원, 2026년 93조원, 2027년 101조원 등으로 급증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편 이 회장은 이날 재가(在家) 임종 제도 추진 등 노인 권익 신장을 위한 4가지 방안도 제시했다. 재가 임종 제도는 노인들이 요양원이 아닌 집에서 임종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이 회장은 “현재 요양원에서 쓸쓸히 임종을 맞이하는 분이 많다”며 “요양원에 예산을 지원하는 것처럼 재가 간병인 예산을 만들어 노인들이 집에서 사랑하는 가족들의 손을 잡고 임종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또 노인 돌봄을 위한 외국인 간호조무사의 국내 취업 허용 등도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