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병원의 신생아실 모습. 기사 내용과 무관한 사진. /뉴스1

불가항력적으로 발생한 분만 의료사고에 대한 국가 보상금 한도가 3000만원에서 3억원으로 인상된다. 산과 의사 등 의료진이 충분한 주의·예방 의무를 다했음에도 발생한 의료사고는 재판을 통해 손해배상을 받을 가능성이 낮다. 이 경우, 국가가 위원회 중재 과정을 거쳐 보상해주는데 이 금액을 10배로 인상하기로 했다.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대폭 늘려야 한다는 의료계의 요구를 반영한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24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의료분쟁 조정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일부 개정안을 12월 3일까지 입법 예고한다고 밝혔다. 불가항력 분만 의료사고에 대한 국가 보상금 확대 조치는 내년 7월부터 시행된다. 보상금의 재원은 기존엔 국가와 의료기관이 7대3으로 부담했으나 지난해 12월부터 국가가 100% 부담하고 있다.

현재 분만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환자나 의료인은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조정·중재를 신청할 수 있다. 중재원 감정 결과 ‘의료인의 과실이 없다’는 결론이 나오면 의료사고 피해자는 보상 청구를 할 수 있고, 중재원의 의료사고 보상 심의 위원회에서 피해자에게 보상금을 얼마나 지급할지 결정한다.

산과에서 발생하는 불가항력 분만 의료사고에는 산모·태아·신생아 사망과 신생아 뇌성마비 등이 있다. 분만 의료사고 보상금 지급 대상에서 선천적 요인에 의한 사례 등은 제외된다.

정부가 불가항력 분만 의료사고에 대한 국가 보상금을 최대 3억원으로 현행보다 10배로 인상하기로 하면서 산과 의사의 소송 부담도 다소 줄어들 전망이다.

불가항력 분만 의료사고에 대한 국가보상금 한도가 최대 3억원으로 대폭 늘면, 의료진을 대상으로 민사소송을 제기하지 않고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보상금을 청구하는 의료사고 피해자들이 증가할 전망이다. 불가항력 분만 의료사고 피해자는 보상금을 받고도 중재원의 조정에 합의하지 않고 의료인을 대상으로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다만 이때 피해자는 ‘의료인은 과실이 없다’는 내용의 감정서를 확인한 뒤 보상 청구한 것이기 때문에, 재판에서는 불리한 결과를 받아들여야 할 가능성이 높다.

이날 정부는 보상금 지급을 결정하는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보상 심의 위원회의 구성도 확대·강화하기로 했다. 위원회에 참여하는 의료진 가운데 산부인과 전문의를 2명에서 3명으로 늘리고 복지부 고위 공무원 1명을 추가해 위원을 총 9명에서 11명으로 확대한다. 중재원장이 임명하던 심의 위원장은 앞으로 복지부 장관이 임명해 정부 책임을 강화하기로 했다. 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따르면, 정부는 2013년 제도 시행 후 지난해까지 불가항력 의료사고 총 133건에 대해 31억9000만원을 보상했다.

한편 정부는 분만 외에도 의료사고 피해자의 신속한 구제를 위해 운영 중인 ‘간이 조정 제도’를 통해 피해자가 받을 수 있는 보상 금액을 5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늘리기로 했다. 이 제도를 통해 소액이거나 사실관계·과실 유무 등 쟁점이 간단한 사건은 신속하게 보상해주고 있다.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7월 기준 일반적인 의료 분쟁 사건은 처리 기간이 82.7일에 조정 성공률이 70%인 반면, ‘간이 조정’ 사건은 처리 기간 26.6일에 조정 성공률이 100%다.

대한산부인과학회에 따르면, 올해 158명인 산과 교수는 2041년에 59명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빅5 병원 산과 전임의 수는 2007년 20명에서 올해 9명으로 17년 만에 절반 아래로 줄었다. 이에 따라 지난해 12월 복지부는 산과 보상 강화를 위해 연간 2600억원의 건강보험 재정을 투입해 분만 수가(건보공단이 병원에 주는 돈)를 올렸다. 특별시·광역시 등 대도시를 제외한 전 지역 의료기관에 분만 건당 55만원의 추가 보상을 지급하는 지역 수가도 신설했다. 고위험 분만의 경우 최대 200%까지 수가를 가산하고 있다.